오래가기를 바랄 뿐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다 지금까지 내 옆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동안 누구는 잠깐 친해졌다 말았고, 다른 누구는 처음부터 친해지고 싶지 않았으며, 또 누구는 몇 년을 같이 지냈음에도 아는 게 없을 만큼 친하다고 하기엔 애매했다.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왜 나와 안 친해졌고, 반대로 나와 친한 사람들은 왜 친해졌을까?
분명 나와 안 친한 사람들에게도 친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멀리하는 사람을 누군가는 친해지고 싶어 하는데 나의 어떤 점이, 나의 어떤 모습과 생각 때문에 친해지지 못했을까?
나랑 잘 맞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모두가 싫어하는 게 아닌데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칭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하던 중 한 교양프로그램에서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렇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랑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있다. “라는 말을 듣고 인상에 깊게 남은 적이 있다.
‘그래,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반대로 내가 좋아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인 걸 보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라 ’ 나랑 잘 맞는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그렇다면, 나랑 잘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랑 잘 맞는 사람.
사실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도 막막했고, 주변 사람들 모두 다른 모습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들과 두루 친한 나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복잡했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살다 보니 이렇게 남아있었을 뿐이라 딱히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랑 잘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들과 내가 무엇이 잘 맞을까?
그리고 무엇이 맞다고 하나로 정하기도 애매했다. 맞다고 생각한 부분이 어떤 날에는 맞지 않았는데 그래도 맞다고 하는 게 맞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나랑 잘 맞는 사람의
정의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는 것을 보고 ‘나랑 잘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랑 잘 맞는 사람’은 내가 그 사람에게 받고 싶은 게 있는, 내가 필요한 것을 상대방을 통해 얻는 관계라는 답을 내렸다. 받고 싶은 것, 얻는 다라는 단어 자체만 보면 비즈니스 같고, 우정이나 친목과는 먼 느낌이 들지만 관계도 어느 정도 비즈니스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누군가를 만나 피해를 받거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면 나에게 좋은 건 없기 때문에 사실 필요가 없다.
괴롭힌다거나 하는 등의 피해를 의도적으로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의도가 없어서 그들에게 뭐라 말하기도 애매했다. 별 뜻 아닐 텐데 내가 괜히 속상해하는 것 같고 상처받은 것 같아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 하였지만 쌓이다 보니 이렇게 만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고 이런 마음이 생긴 것에 누구의 잘못이랄 게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은 그것들로 트러블이 생기는 상황을 겪게 되면서 ‘나랑 잘 맞지 않은 사람’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어떤 부분이 맞지 않았는지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그런 사람과의 만남이 기대되거나 아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게 없다면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고,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답을 내렸다. (반대로 누군가가 나에게 받고 싶은 게 없다면 그들 또한 내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랑 잘 맞는 사람이라 해도 안 맞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고, 나랑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잘 맞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느끼면서 더욱 ‘나랑 잘 맞는 사람‘의 기준이 애매했다.
‘지금’
내가 얻고 싶은 것
그래서 나는 ‘안 맞음’보다 ‘맞음’의 개수가 더 많으면 나와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것인가를 생각해 봤는데 상황과 시간에 따라 ‘맞음’의 개수는 변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A와 이런 부분이 맞았는데 지금은 안 맞는다면 안 맞음 -1이고 과거에 안 맞았다가 지금 맞으면 맞음 +1이라 하면 지금까지의 맞고 안 맞는 상황을 일일이 셀 수가 없다.
그래서 ‘맞음/안 맞음’보다 ‘얻음’이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A를 통해 얻고 싶은 것, B를 통해 얻고 싶은 것. 사람마다 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얻고 싶은 게 그에게서 뺏는 게 아니라 그가 흔쾌히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A에게서는 따뜻한 말을 얻고 싶고, B에게는 조언을 얻고 싶다. C에게는 재미를 얻고 싶고, D에게는 설렘을 얻고 싶다. 그것은 내가 필요한 것이자 그들이 흔쾌히 나에게 쉽게 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받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나에게서 어떤 부분을 얻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서로 주고받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럼에도’라는 예외적인 상황이지만 안정적인 관계는 서로 얻는 것이 ‘큰’ 관계라 느꼈다. 많고 적음보다 얻는 것이 큰.
크다라는 게 상대적이라 서로 필요의 수준을 맞추기 어렵고, 바뀌기 쉽기 때문에 관계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부담 없이 줄 수 있고, 서로가 얻는 게 큰 관계가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나는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