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잖아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등 목표를 이루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나는 한 번에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10번 해야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원샷원킬, 원패스의 확률이 현저히 낮았다. 남들은 한 번에 되고, 쉽게 하는 걸 나는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해야 되었으니 보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서 많이 혼나기도 했다. 제대로 좀 하라고, 열심히 하라고. 나의 부족함을 한심하게 보는 이가 있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어영부영 어떻게든 따라가려 했고 기어코 그 지점까지 도달했다.
“봐봐, 할 수 있잖아.”
늘 저 멀리, 혹은 아래에 있던 내가 그들과 같이 섰을 땐 생각보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통과’, ‘합격’, ‘몇 등’ 임에도 뿌듯함이나 안도감 같은 건 없었다.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한 번에 잘하지
못하는 이유
처음에는 운이 안 좋았다는 핑계를 대었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 운이 안 따라줬다는 이유, 그날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는 이유, 이런저런 일들과 상태를 꺼내며 내 노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적극 어필했다.
그러다 본질적인 사실을 마주했을 때.
“핑계 대지 마, 그냥 넌 제대로 노력하지 않은 거야.”
노력이 부족해서, 대충 해서, 간절하지 않아서 -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차마 인정하기 싫어서 외면했던 말들을 결국 들었을 때 비로소 마주했다. 노력이 없고, 대충 하는 나를.
사실 맞지.
그만큼 노력을 했으면, 제대로 준비했으면 당연히 나왔어야 할 결과값이 나오지 않았다는 건 노력이 부족했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높은 등수, 고득점을 바라고, 상위권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기본 커트라인을 넘어야 하는 일에서 그 기본도 넘지 못했으니. 진심을 다해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결과를 받게 되었을 때 드는 억울함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노력을 안 했다는 증거겠지.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 인정한다. 하지만 억울함도 들었던 것 같다. 시험처럼 일정기간 준비해서 결과를 내는 것 말고 모두가 처음 할 때. 예를 들어 갑자기 주어진 과제를 즉시 수행해 제출한다거나, 급히 처리할 업무가 생기는 경우. 모두가 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임에도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은 뭐지 싶었다. 그들은 미리 알고 있어서 잘한 걸까, 아니면 이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그간 노력을 하고 있었던 걸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아니었겠지. 할 거라는 언질도 없었고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언을 한 것도 아니고. 과제나 업무를 건네는 사람조차 일어날지 몰랐던 상황인데 어찌 한 번에 할 수 있었을까?
이런 부분에서 내가 괜한 억울함이 들었다. 노력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한 번에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괜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나는 왜 한 번에 잘할 수 없을까?
그들과 비교하며 괴로워하고 괜한 질투도 하고 심술부린 적이 있지만 나와 다른 점은 수도 없이 있고, 그런 부분들 중 어떤 것이 원인인지도 정확히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약 찾았다한들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면 어쩔 텐가. 이미 바꿀 수 없는데. 타고나지 않았다 해서, 이런 부분이 없다고 말해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걸.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여러 번 해야 되는 사람이구나’ 인정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두세 번 다시 하는 과정이 계단을 밟아온 거라며 더 잘할 수 있는 기반을 쌓았다 생각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더 괴로웠다. 한 번만에 되는 걸 여러 번 해야 하니까 효율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남들은 한 번에 되어 다음 단계를 향해 가는데 나는 아직 그 자리니까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해 아까웠다. 그만한 시간과 그동안의 돈이 쓰이지 않아도 되는데 써야 해서. 토끼와 거북이처럼 처음에 느린 거북이가 열심히 이동해 먼저 간 토끼보다 결승선에 들어오는 일도 있지만 토끼 중에서도 애초에 빠른 토끼는 앞지를 수 없다. 그리고 점점 그 토끼가 쓰는 시간과 돈, 그리고 거북이가 쓰는 시간과 돈의 격차는 멀어질 것이다. 1부터 10까지의 단계가 있다면 거북이인 내가 1까지 가는데 쓰는 시간과 돈으로 빠른 토끼는 8,9 어쩌면 벌써 10에 도착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냥 인정해 버리기로 했다. 역시 토끼는 빠르구나, 역시 거북이인 나는 느리구나. 더 이상 토끼와 거북이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내가 거북이임을 인정하면 해결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