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행복해졌을까?

자본주의 밖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 2

by 강준혁


'노동자가 더 많이 생산할수록 노동자는 더 적게 소비해야 한다는 것, 그가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수록 그는 더 무가치 해지고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 그의 생산물이 더 정형화될수록 그는 더욱 기형화 된다는 것, 그의 대상이 문명화될수록 그는 더욱 야만화 된다는 것, 노동이 더 강력해질수록 노동자는 더욱 무력해진다는 것, 노동이 더 지능적으로 될수록 노동자는 더욱 어리석어지고 자연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 경제학 철학 수고 (칼 마르크스)



아주 슬픈 것은, 그 폐지를 줍던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처럼 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에게 매겨지는 값은 더욱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폐지를 주워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폐지의 가치는 낮아질 것이며, 이에 따라 폐지를 줍는 사람의 가치도 낮아질 것이다.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이 증가할수록, 우리는 더 낮은 값에 일해야 하거나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해야만 한다.


또, 분업을 통해 우리가 하는 일이 매일 반복될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매일 같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해야만 하며, 그 시간이 반복되면 될수록 우리의 능력은 고작 그 단순한 업무를 하는데 국한된다. 그렇게 우리가 가진 다양한 능력들은 모두 퇴화할 것이고 그 일을 벗어난 곳에서 우리는 무력해질 것이다. 노동이 더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더욱더 멍청해지고 그저 같은 일을 반복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일이 단순해진 만큼 더욱더 대체되기도 쉬워질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한 업종에 오래 종사했던 사람은 그 분야를 떠나면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평생 프로그래밍에 몰두한 사람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다면 어떤 자본주의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가? 먹고살기 위해 같은 환경 속에 매일 던져져야만 했던 나는, 오히려 그것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인간은 어떤 재료로 어떤 모양으로 만들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내열성과 내구성을 갖출 수 있을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게 되겠죠? 이것이 '구상'입니다. 여기서는 그 결과, 옹기 같은 것을 만들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구상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실제로 손을 움직여 옹기를 만들어 봅니다. 튼튼한 옹기를 만들기 위해 좋은 흙을 파내고, 물을 넣고 반죽하고, 성형하고, 소성합니다. 이런 일련의 노동을 통해 구상을 실현하는 과정이 '실행'입니다.

인간이 머리로 생각하는 구상의 작업을 마르크스 자신은 정신노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실행은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육체노동'입니다(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구별이 아닌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본래 인간의 노동은 구상과 실행,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통합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생산력이 높아지면 그 과정에서 구상과 실행, 혹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분리된다고 마르크스는 말했습니다. '구상'은 특정 자본가나 자본가에게 고용된 현장 감독이 독점하고, 노동자는 '실행'만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그들은 자본가들이 구축한 분업 시스템에 편입될 뿐, '구상할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공장에서는 정해진 부분 작업을 매 일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지식과 통찰력을 쌓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장의 흐름에 따라 일의 내용은 계속 바뀌게 될 것입니다. 단순노동은 대체가 쉽기 때문입니다. '실행' 측면에서도 과거 직인처럼 풍부한 경험을 쌓고 기술을 익히는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꽃피울 수 없습니다.


-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우리는 대부분 노동현장에서 '구상'의 능력을 박탈당한 존재다. 자본가가 원하는 일을 기계처럼 묵묵히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자본가의 눈에 거슬리거나 아니 자본가의 눈에 거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든 더 저렴한 대체재로 교체될 수 있는 Particularity일 뿐이다.


그럼 기계가 더 많이 도입된다면 인간의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계 노동은 신경계를 극도로 피곤하게 하는 한편, 근육의 다면적 작용을 억압하고 심신의 모든 자유로운 활동을 봉쇄한다. 심지어 노동의 완화조차도 고통의 원천이 된다. 왜냐하면 기계는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내용에서 해방하기 때문이다.'


자본론 (칼 마르크스)


기계는 우리를 편하게 해줌과 동시에 불편하게 만든다. 기계의 도입은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내용에서 해방시켰다. 즉 일을 더 간소화 시킴으로써 인간은 더욱 단순한 존재가 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는 '구상'의 입지를 더욱 잃었고, 기계의 도입으로 일자리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으며, 노동자의 값어치도 하락하게 되었다.


노동자는 점점 증가하는 노동자와 경쟁하는 것도 모자라, 기계와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실제로 키오스크가 얼마나 많은 인력을 대체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노동환경이 더 열악해질수록 노동자는 자본가의 힘에 더욱 강하게 종속되어야만 한다.


자유라는 것은 결국 No를 말할 수도, Yes를 말할 수도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인데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선택지를 박탈시킨다.



그대가 먹고, 마시고, 책 사고, 극장, 무도회, 선술집에 가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이론적으로 따지고,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싸움하는 일 등을 더 적게 할수록, 그대는 더욱더 많이 절약하게 될 것이고, 좀벌레나 도둑이 먹어 치울 수 없는 그대의 보화, 그대의 자본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그대의 존재가 적을수록, 그대의 생명이 덜 표현될수록, 그대는 더욱더 많이 가지게 될 것이고, 그대의 외화된 삶은 더욱더 커질 것이며, 그대의 소외된 본질은 더욱더 저장될 것이다. 국민경제학자가 그대의 생명과 인간성에서 탈취해 간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국민경제학자는 그대에게 화폐와 부로 주며, 그대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그대의 화폐는 할 수 있다.


- 경제학 철학 수고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다. 절약한다는 것은 돈을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욕망을 절약하는 것뿐이라고.

자본을 모은다는 것은, 자본을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우리의 감정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사람임을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더 많이 가질 수 있다고.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닌, 화폐가 하는 것들이라고.


자본주의를 잘 요약하는 말 중 하나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산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 좋은 상품이 나오며 그와 함께 인간의 욕망도 함께 발달하는데, 그 욕망은 우리가 소유한 자본의 양만큼만 채울 수 있다. 스마트폰, 고가의 점퍼를 갖지 못하면 따돌림까지 당하는 이 사회에서 가난한 부모는 설 자리가 없다. 그들은 평생 죄의식을 가진 채로 자식을 바라봐야 한다.

소유의 격차는 사회적 소회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고가의 점퍼를 입은 아이들 사이로 낡은 점퍼를 입은 아이를 보낼 때의 그 무력함은 어디서 위안받아야 할까? 만약 그 부모가 몸이 아프거나, 장애를 가지고 았다면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공평한 출발선에 서본 적 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첫째: 노동임금의 상승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초과노동을 초래한다. 노동자들이 더 많이 벌어들이려 할수록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더 많이 희생해야만 할 것이며, 모든 자유를 완전히 단념한 채로 탐욕에 봉사하는 노예 노동을 해야만 할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러한 그들의 수명단축은, 그로 인해 항상 새로운 공급이 필요해지므로 노동자계급 전체에 대해서는 유리한 상황이다. 이 계급은 완전히 파멸하지 않기 위해 항상 자기 자신의 일부를 제물로 바쳐야만 한다.



- 경제학 철학 수고 (칼 마르크스)


우리는 모든 자유를 포기한 채로, 모든 노동력을 자본가의 탐욕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노동이 고되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수명이 단축되며, 노동자들이 갈려나가고 죽어갈수록 노동자 계급에게는

희소식이다. 경쟁자가 줄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자라는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고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다.



'언제쯤 나아질까 전반적인 내 삶

뛰고 뛰어도 전반전인 내 삶

난 벌써 지쳐 쓰러지기 직전

어서 심판 양반 시간 좀 확인해 봐

내가 사고 싶은 옷과 내가 살 수밖에 없는 옷

바라던 인생과 달리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

그 어려운 산수밖에 없는걸

숨, 내가 가진 건 산소밖에 없는걸

24시간 중 열 시간을 넘게 일해도

남의 연봉보다도 0이 적네



그럼 그렇지 처음엔 울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커지는

경험치 덕에 이제 끄떡없지

그 대신 돈이면 다 된단 말에 고갤 끄덕였지

교과서는 이 세상을 못 담아

내가 배운 삶과 너무 커 오차가

'소년이여 너의 꿈을 쫓아가'

일단 내가 사는 집이 너무 좁잖아'


빈지노 - 삐걱삐걱 (미공개곡)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삶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이는 자본주의가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일하지만, TV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삶을 누리는 소수와는 다른 현실에 직면한다.


그렇기에 내 욕망 중 무언가는 반드시 포기되어야만 하며, 내가 가진 자본에 의해 삶의 평수가 짜여진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삶과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꿈을 좇으라는 말을 믿고 싶어도, 우리 앞에 놓인 것은 깊은 절벽이다.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추락의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모든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없는 이유는 대부분 생존을 위해 삶의 시간을 ‘자본’ 획득에 쏟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의 압박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꿈을 좇는 사람은 마치 주어진 길을 거스르는 사람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압박 속에서 자신의 행복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정말 자유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