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jective Activity.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by 강준혁

*12월 5일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오늘, 국회의사당에 다녀왔다. 그날 우리는 모두 대통령이 무력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직접 파괴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의(代議)’와 ‘민주(民主)’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의(代議): 대신할 ‘대’, 의논할 ‘의’.

민주(民主): 백성 ‘민’, 주인 ‘주’. 나를 대신해 내 주권을 대표할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투표권만 가진 채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 선출된 사람의 말과 행동에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 과연 ‘주인’이라 불릴 수 있을까? 그들이 나를 대신해 뽑혔다고 해서, 정말 나를 대변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은 내 표를 발판 삼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뿐이다. 우리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이 정한 법에 따르기만 한다. 그리고 "네가 뽑았으니 4년 혹은 5년은 참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황당한 논리가 따라붙는다. 5년을 참고 견뎌야만 하는 주인? 그것은 주인이 아니라 노예 아닌가?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괴물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탄핵의 권한조차 갖지 못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려면,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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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탄핵이 가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집을 나섰다. 그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오후 2시에 집을 나섰는데, 도착해보니 이미 5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버스 배차 간격이 길기도 했지만, 몰려든 인파로 인해 도로는 심하게 막혀 있었다. 끝없는 수평선을 사람의 형상으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 할머니, 할아버지, 중년의 남성과 여성, 학생, 아이들까지. 사람이 너무 많아 휴대폰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목이 터져라 탄핵을 외치는 이들. 이 민주주의의 영웅들은 언제나 내가 뽑은 쓰레기들을 치우는 데만 이용되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내가 읽은 책과 접했던 강의들을 통해, 대의민주주의가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분명 내 머리와 가슴이 향하는 곳은, 우리가 처한 이 현실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대의민주주의는 결코 종착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게 지식이 쌓일수록 내 비겁함도 자라났던 것 같다. 그 오만함과 비겁함을 깨기 위해,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이 무리에 섞이고 싶었다. 지식이 쌓일수록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나. 나는 그 냉소 뒤로 숨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좀 더 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 비겁함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들었다. 오늘 이 발걸음을 이끈 건, 비겁함을 벗어나고 싶은 하나의 몸부림이었다. 우리는 왕정을 지나, 군사정권을 지나 누군가를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그 당연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다. 세상을 바꾼 건 결국 그 피의 주인들이었다.



나는 믿는다. 나를 둘러싼 이 사람들과 나는 서로 다른 지향점을 품고 있지만, 이 지점만큼은 우리 모두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디를 향하든, 우리를 힘으로 억압하려는 자들 앞에서는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대의민주주의’라는 곳은 그저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무력으로 빼앗으려 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발터 벤야민의 말이 떠오른다. “항상 그때그때의 한 걸음만이 진보이며, 두 걸음도, 세 걸음도, n+1보도 결코 진보가 아니다.” 한 걸음씩 계속 걸어가는 것. 설사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끝없이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 끊임없이 성숙을 향해 페달을 밟는 것. 나는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믿는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섞여 있는 내 모습이, 탱크와 총칼 앞에 섰던 민주화의 영웅들만큼 대단한 도약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 가슴이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 있을때 비겁함에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고.


2024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역사에 기록될 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언젠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하나의 죽음으로 남겠지만,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적어도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두려워질 때나 비겁해질 때 항상 되새기는 말이 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고,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라는 말. 앞으로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난 흔들리겠지만, 그 다짐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내내 듣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어느 날 부끄러웁겠지 그냥 살아온 인생, 거짓과 위선 속에 서로 속이며

정직한 나, 필요한 내가 되고 싶었어 아름다운 ‘날’ 만들기 위해"




Objective Activity.

Ob는 '내 앞' 혹은 '맞은편, 반대편'을 의미하고, Ject는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Object—내 앞에 던져진 무엇. 나를 가로막는 무엇. 내가 극복해야 할 것, 저항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즉, Objective Activity란 내가 저항해야 하는 대상을 향해 행동하는 것.

이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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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책상 보세요 이걸 현실로 인정하고 우회하면, Object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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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로 반드시 가야 된다는 자유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여기에 부딪힐 거에요. 이렇게.

이럴 때 Object는 발견돼요. 경계 끝까지 나가본 사람만이 구속을 느끼듯이 끝까지 걸어가 본 사람만이 저항을 느껴요."



현실을 인정하라는 말에 속아 굴복했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헛소리들이 나를 잠식할 수 없을만큼 강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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