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의 열쇠는 너에게 있었다.
우리는 매일 가면을 쓴다. 회사에서, 친구들 앞에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조차. 내 맨얼굴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어느새 가면이 곧 내 얼굴처럼 굳어버리고, 나는 그 얼굴로 웃고, 말하고, 사랑받는다.
그런데 문득, 어떤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맨얼굴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순간, 어딘가 낯선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어쩐지 '내'가 아닌 것 같은 얼굴. 거울을 보듯 불쑥 드러난 그 얼굴 앞에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서둘러 다시 가면을 덮는다. 그 얼굴이 너무 낯설고, 너무 진짜 같아서 피하고, 외면하고, 감춘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누군가는 가족에게서, 누군가는 학교에서, 인간관계에서, 혹은 사회생활 속에서 상처받는다. 그 상처들은 차곡차곡 쌓여, 내 안에 결핍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결핍은, 언젠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가 된다. 누군가가 내 그런 모습을 알아챈 듯한 순간,
결핍은 날카롭게 날이 서고, 방어는 공격이 된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방패가 되고, 그 방패는 결국 누군가를 향한 무기로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가면을 벗는 법을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내 맨얼굴이 무엇이었는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파처럼, 가면 위에 또 다른 가면을 덧씌우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조용히 외치고 있다. 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나로 사랑받고 싶다고.
왜 어떤 사람 앞에서는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걸까. 꾸미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이해받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오는 순간은, 아마도 그런 사람 앞에서 일 것이다. 그 사람의 온기 앞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갑옷을 벗어 내려놓는다. 그리고 한 겹 한 겹, 가면을 벗는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혹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맨얼굴이 나오려 할 때마다 절제하고 또 절제했다. 끝도 없는 자기 검열의 굴레 속에 나를 밀어 넣으며, 버텨왔다.
그런데 그 사람 앞에서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없다. 잘 보이고 싶던 마음도, 나를 포장하던 습관도 조금씩 자리를 잃는다. 마치 아무 준비 없이도 이미 괜찮은 상태인 것처럼, 마음이 먼저 풀리는 사람.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고민하기도 전에,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먼저 나와버린다.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가 괜찮아지는 자리. 준비되지 않은 나조차 받아들여지는 자리.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은 아주 편안히 흐른다.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이 좋다. 그 사람은 나조차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해 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나 역시 서서히 긍정하게 된다. 그 사람의 눈은 단지 나를 보는 시각적 정보기관이 아니라, 나를 비춰주는 하나의 조명으로 작동하는 것만 같다. 그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안의 무언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내가, 어떤 눈길 아래선 조용히 형태를 얻는다. 빛도 닿지 않고, 먼지가 내려앉아 내가 가진 줄도 몰랐던 곳에 누군가 조용히 조명을 비춰준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지닌 것을 통해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사랑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가끔은 시간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 사람과 있으면, ‘지금’만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랑은 어떤 전략도 허락하지 않는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는 마음도, 약점을 감추려는 습관도
그 사람 앞에서는 조금씩 자리를 잃는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이미 괜찮은 상태. 방법이 없다는 것, 그 무방비한 상태야말로 사랑의 가장 정확한 온도라는 걸, 그 사람 앞에서 처음 깨닫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법은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시도함으로써, 무언가를 사랑함으로써,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음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나를, 나는 조금씩 발견해 왔다. 내가 나를 비추는 일은, 결국 내 바깥에서 출발한다. 좋아하는 장면, 깊이 빠져든 음악, 내게 반응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구성하고, 그 반응 속에서 나는 나를 알아간다. 나는 내 안에서 나를 찾지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통해, 내가 사랑한 사람을 통해 나를 스케치하고, 채색해 나갈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네 앞에 있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라고 혹은 '나는 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사랑한다'라고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언제나 뒤쪽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중심에 서 본 적도, 주인공이 되어본 적도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갑작스럽게 내 삶에 떨어진 한 문장. 예고도 없이 날아온 운석처럼, 내 마음 어딘가에 충돌해 중심을 바꿔버리는 사건. 단단했던 나의 삶의 표면이 금이 가고, 그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운석이 충돌하기 전의 세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내 삶의 모든 것들이 그 운석을 중심으로 재배치되는 사건. 나 역시 그 사람을 중심으로 다시 배치되는 것. 그 사람이 내 삶의 중심이 됨으로써, 나의 이름도 중심에 서게 되는 것.
그렇게 사랑은, 내 수많은 가면 속에 묻혀 있던 맨얼굴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준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말 없는 확신.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그 얼굴을, 나 스스로도 서서히 긍정하게 되는 것. 그게, 사랑이 마법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사랑은 가면을 벗어야만 가능한 일이며, 동시에 사랑이 가면을 벗게 만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열리지 않는 방이 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은 스스로도 문이 어디 있었는지 잊게 만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없이 다가와, 굳게 잠긴 그 문의 손잡이를 천천히 찾아낸다. 사랑이란, 결국 나조차 들어가지 못하던 방의 불을 켜주는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