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책장 한 칸
청해
이사를 했다.
이사 갈 집은 비어 있어서 가장 어려운 주방 살림을 몇 번 차에 싣고 가서 여유롭게 정리해 나갔다. 집의 구조를 익히며 어떻게 집안을 꾸며야 할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가장 좋은 것은 오롯이 나만의 서재를 꾸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사를 했다.
6월 26일, 그날은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다. 이삿짐센터에서 하루 앞당겨 이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 흔쾌히 승낙을 하니, 순조로운 출발이다.
미리 집안의 구조를 익힌 탓에 척척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세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이전의 집보다 더 꾸며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장과 책상이 놓일 나만의 공간이 될 방으로 향했다, 방에는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쌓여 있었다. 일단, 방 끝에 붙어있는 창고에 보지 않는 책들과 앨범 등을 정리했다. 마음속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는 생각들이 가득함에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항상 처리되어 가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나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나름 애증이 가는 것들이기에 어쩌지도 못하는 것들이었다. 정리해야 할 텐데.
책장 두 개를 붙이고 책을 꽂기 시작했는데 거의 시에 대한 책들이다.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 꽂히는 데 뭔가 벅차오른다. 이제껏 서재라고 해봤자 책상과 걸상은 나의 일터였던 곳, 안정된 곳이 아니라 긴장으로 가득했던 곳, 항상 고달팠던 곳, 날 위한 책 한 권 읽을 수 없던 곳, 학생들의 숨소리를 오롯이 느끼게 만든 곳, 그 숨소리를 들으며 나의 열정에 뿌듯해했던 곳, 누군가가 앉기만을 기다리던 곳, 나중에는 텅 빈 의자가 숨 막히게 했던 곳, 꼭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외면해졌던 곳, 이런 마음을 나 자신에게 털어놓는 데 오랫동안 망설였던 곳, 나의 일에 종지부를 찍은 곳이기도 했다. 들어가기 싫어서 여기저기에 책들을 흘려 놓으며 이방 저 방 책에 치여 살았는데, 이제 여기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롯이 나만의 공간으로 채워지는 것이었다.
책을 다 꼽았다.
정리하다 보니 책장 한 칸을 가득 메운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정리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한 칸 전부가 권 선생님이 내게 주신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선생님은 내가 시를 시작할 때 처음 알게 된 분이다. 처음 문화원에 가서 시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바로 내 옆에 앉아계셨다. 시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그래도 듣는 귀는 있어 선생님 시가 너무 좋았다. 어떤 분이실까? 궁금했는데, 한 달쯤 지난 후에 내게 말을 건네주셨다.
“어때, 시는 잘 써져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 시 정말 좋아요. 어떤 분이신지, 무얼 하시는 분인지 궁금해요.”
그날 나는 선생님 집을 방문하게 되었고, 선생님 서재 사방으로 시책으로 덮여있는 것에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시를 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구나. 시 쓰는데 시집을 읽는 것도 몰랐던 내가, 시 한 줄 못쓰고 있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 선생님의 첫 번째 시집과 또 다른 시집 몇 권을 받아 들고 선생님 집을 나온 그날 이후로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이 평생을 아끼며 읽어오신 책들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게 두 권이나 있네요. 사다 보니까 같은 책을 또 샀나 봐요.” 하며 주시기도 하고, 꼭 내가 읽을 만한 책이라 생각하면 빌려주시기도 해서 2년 5개월이 지난 지금의 나는 그나마 시를 쓰는 시간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그것이 나의 행복이란 것도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한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주신 책이 이렇게 많은 줄을 몰랐는데 정리하다 보니 책장 한 칸을 가득 메운다. 나의 첫 번째 시 스승이라 생각하는 선생님, 그분에게서 듣는 ‘시벗’이란 말도 내게는 감동이다.
“나는 내 시를 좋아한다기에 조금 시를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맹탕이야.”
또 이런 말씀도 하신다.
“잘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 나가면 좋은 시인이 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