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야채칸에 푸성귀 세 묶음이 있었다.
한 묶음은 며칠 전 큰집에 갔더니 형님(동서)이 텃밭에서 상추, 고추, 부추, 등을 따서 담아주신 거라서 조금씩 먹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하나는 집 근처에 사는 지인 L이, 농사짓는 사돈이 보냈다고 여러 가지 섞어서 먹으라고 보낸 거였다. 집에 푸성귀가 너무 많아 옆집 할머니께 드렸다.
봉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나 보면 욕심이 날 거고, 이것 저것 빼다 보면 남에게 주는 것의 가치가 떨어질까 봐 풀어보지 못하고 드렸다.
봉지 속에 담겨 있는 지인의 정성이 고스란히 옆집으로 이사를 갔다.
L에게 미안했다. '보낸 사람 성의를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그래도 풀어 보기는 했어야지.' 이 생각을 하며
카톡에 고맙다는 인사로 마무리했다.
나머지 한 봉지, 이게 문제였다. 한참을 생각해 봐도 누가 주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큰집에서 가져오고, L이 주고, 또 누구지?'
봉투도 뜯어보지 않고 그냥 푸성귀거니 하고 냉장고 속에 넣어 두었다. 머릿속에 푸성귀가 들은 검은 비닐봉지의 출처를 찾아 하루 종일 머릿속을 뒤졌다. 하루 이틀 지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큰집에서 가져온 푸성귀는 형님이 물기 없이 정성 들여 포장해 주어서 몇 주 두고 먹어도 끄떡없었다.
며칠이 지나 출처 모를 푸성귀 봉투를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많이 상해 있었다. 상추, 오이, 치커리 등
조금만 지나면 다 버려야 했다.
오늘 바로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성한 것을 고르니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전체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깨끗이 씻어 양푼에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한 입 떠 넣었다.
'왜 기억이 안나지?' 치매에 걸리려고 그러나?' 어이가 없었다.
'아! 그때, 맞아.'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에 사는 친구가 준 거였다.
까맣게 잊어버렸다. 비빔밤을 한 입 두 입 먹으면서 미안함이 몰려왔다. 같은 동네에 있을 때는 일주일이면 두세 번 본 친구였는데, 이사오고도 한 달이면 한 번 정도는 꼭 찾아보던 친구였는데, 무슨 일만 있으면
전화를 걸던 친구였는데, 자꾸 뜸해지더니 이젠 몇 달에 한 번 보는 사이가 되더니...
한참 보지 못해서 찾아갔더니 오래간만에 만났다고 이것저것 챙겨놓았던 것들을 싸주었는데, 그 속에 이 푸성귀도 들어 있었던 것을 잊고 있었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한참을 먹먹해했다. 비빔밥에 목이 메었다.
'내가 잊고 있나 보다. 마음에서 많이 멀어졌나 보다.'
목소리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비빔밥을 먹다 말고 휴대폰을 들었다.
정으로 주고받는 먹거리, 누군가를 위해서 정성 들여 싸준 것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주는 사람의 마음은 나눠 먹는 사실만으로 그냥 기뻐했을 것이다. 끝까지 잘
먹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에 걸린다. 심지어 그걸 잘 먹지 못한 것도 모자라서 준 사람까지
잊어먹었다.
그 일은 나의 마음 한 구석에 반성의 시간을 갖게 만든다. '앞으로 잘해라.'
다행히 L이 준 푸성귀는 미안함이 들어도 나눠 먹는 의미에서는 먹을 사람에게 제대로 보냈으니 진심은
통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