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어디만큼 가고 있는가?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말연시가 되면 평상시보다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나에 대해 신중하게 질문을 한다.
산다는 것이 어디 내 맘대로 가는가? 나의 삶과, 내가 그리는 삶의 괴리가 컸던 때는 늘 파도처럼 크게 작게 흔들렸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지난날의 심경은 그림과 같은 영상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서글프고, 가슴 아프고, 허전하다.
이제까지의 삶에서 지금이 감정적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움이 생겼다. 하던 일을 접고 난 다음부터인 것 같다.
은퇴를 계획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계획에 따라 미래를 설계하겠지만 밀려난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사회적인 단절을 가져오고, 사회적인 고립을 가져오는 상황이 전혀 딴 세상을 만든다. 인간에게 고독이란 것이 얼마나 지독한 아픔인가?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겁이나 자꾸 도망간다.
어차피 세상은 내가 보는 눈을 통해서 끄집어내야 한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내 이력서 한 줄에 다른 사람이 있던가? 남편과, 자식과, 부모도 내 이력서 안에서 무용지물이다. 오직
나만의 것이 적히고 읽힌다.
우연히 글쓰기가 인생에 찾아왔다. 어설픈 내 글에 가끔은 힘을 얻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왔다.
지난날의 흉터는 아픔이다.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영원히 남는다. 살면서, 살아지면서 남기고 간
흉터들이 녹아내리라고, 글을 쓴다.
내 속에 들어있는 감각 더더미를 곧추 세워 나만의 글을 쓴다.
아직은 내 안의 것들이 나오지 못해 끙끙대지만, 어느 때면 기어 나오기도 할 것이고, 도착해 있기도 한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이 좋다.
글 쓰는 사람이다. 글 쓰는 사람이 가진 고결함이 있다.
아무것도 없어도 자기가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겠다 하며 살아간다. 꿈이다. 아득한 것에 대한 바람. 꿈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살아간다.
이제 파도가 일면 얼마나 높겠는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삶이 있다. 그들에 대한 연민은 남아 있지만 내 삶의 이야기는 잿더미로
가는 길이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여다보면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서, 겨울을 향해서 옷 벗는 과정에 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삶이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