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DINK)족이라는 말이 있다.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말이다.
영어로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자다.
한때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심심찮게 들린다. 자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세대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는 세대, 이것이 나에게도 닥친 일이 되었다.
"엄마, 나는 아이를 안 낳다는 거 알죠?"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는 안 낳을 거라는 말이에요."
뜬금없이 아들이 나에게 한 말이다.
"왜?"
"아이를 낳은 친구들 보면 휴대폰에 아이들 사진밖에 없어요. 자기 생활은 하나도 없고 맨날 지 자식들 얘기만 하더라고요. 자기 삶은 없어요. 그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에요, 내가 벌어서 하나도 못쓰고 애들 키우는데 다 쓰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비 생산적으로 살기 싫어요."
아들의 주장이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면 지금까지 네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즐거움이 있어. 다른 세상이 있다고."
"그건 말이 안 되는 거 알죠? 아무튼 난 아기 낳기 싫어요."
"너 만약에 늙으면 - - "
"그게 제일 이상한 말이에요. 요즘 누가 자식에게 의지하고 살아요. 그런 일이 이제 사라지고 있는 시대라는 거 엄마도 느끼죠?"
자식이 여럿 있는 것도 아닌데, 이 통보가 어이도 없고 이해도 할 수 없었다.
'어떡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며칠 끙끙 앓았다. '나는 아들을 보통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는 평범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원인이 무얼까?'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친구가 되라고 강아지를 한 마리 분양받았다. 생후 2개월 된 요크셔테리어로,
처음에는 손바닥 안으로 쏙 들어갈 만큼 작았다. '다롱'이라 이름 지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예쁜 아기 강아지! 다롱이는 날마다 우리의 기쁨으로 무럭무럭 자라 성견이 되었다. 새끼를 낳을 때가 왔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태어났으면 새끼를 낳아 봐야지."
내 생각이었다.
무사히 다롱이는 새끼를 가졌다. 두 달이면 새끼가 나올 것이다. 먹을 것을 잘 챙겨주었다.
다롱이가 산기를 느낀 것은 하필이면 토요일이고 저녁이 되어서였다. 우리는 여기저기 동물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물병원에 갔는데, 새끼가 너무 크고 시간이 많이 지나 수의사가 죽은 새끼
한 마리를 꺼냈다. 그 조그만 다롱이 몸에서 전화 수화기만큼 커다란 새끼가 퉁퉁 불어 나오니 마음이
무너졌다.
그때 나는 내 가슴이 너무 아파 아들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가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었다.
또다시 새끼를 가졌다. 수의사 말대로 새끼 가졌다고 많이 주지 않고 평상시처럼 먹이를 주었다.
이번에도 다롱이가 산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 토요일이고 저녁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려는데 내 치마에 다롱이가 뭔가 뚝 떨어뜨리는 기분이 들어, 보니 새끼 한 마리였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식구들이 모여 새끼를 받았다. 한 마리는 죽고 세 마리는 무사했다.
새끼들은 잘 자랐다. 다롱이가 자기 새끼라고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우리가 한번 만져보려 하면 으르렁
대기도 하고, 안고 있으면 눈길을 떼지 않고 쫓아다니며 내려놓으라 성화를 부렸다.
2개월쯤 지나 친구와 지인들이 한 마리씩 한 마리씩 가지고 갔다. 내 친구 집에, 지인 집에 다롱이의 새끼들이 있는 것이 좋았다.그것이 당연스러운 일인 줄 알았다.
그때도 나는 말이 없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다롱이는 우리 곁에서 식구로 살다가, 14년을 살다가 떠났다.
다롱이가 우리에게 추억이 될 만큼의 시간이 갔다.
어느 날 아들과 다롱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들이 자기 마음을 울분으로 털어놓았다.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라도 키울 줄 알았어요. 엄마와 아기를 떼어 놓다니, 그 어린것들을 엄마에게서
떨어뜨리는 잔인한 짓을 하는 거야. 다롱이가 얼마나 불쌍하던지.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키우지 않을 거면서 왜 새끼를 갖게 해서 내 강아지를 아프게 하고, 그렇게 고생시켜 - - -"
이 말을 들으니 망치 같은 것으로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저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들어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참 아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내 강아지 아프게 하고.' 그 말은 '내 아내를 아프게 하고.'로 들린다. 이 생각이 왜 드는지 모르겠다.
그 상처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이유가 아니기를 바란다.
나의 죄책감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말이 되냐고 소리 한 번 낼 수가 없다.
반쯤포기를 하고 있어도 마음 한 켠에는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눈치를 본다. 표시는 내지 않지만 어찌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마음속에 자식의 의미를 되새겨질 때면 아들이 어느 날 자식을 가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미련으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