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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Mar 15. 2022

덕후

--광, --마니아

  

  청담동에 살 때, 주위의 아파트나 또는 고급 빌라에 남자 아이돌(idol)이 살았다. 그러면 그 주위에는

여학생들이 떼 지어 진을 치고 있었다. 날이 추우면 담요를 덮고 있고, 이불까지 가지고 와서 남의 집 문 앞이나 계단 같은 곳에 쭈그리고 앉아 또는 누워 그 '아이돌'이 오기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보기는 좋지

않았다.


  기다리는 아이돌이 자정이 넘거나 다 되어 차를 타고 돌아올 때면, 소리를 지르며 차 주위에 붙었다가 차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버리면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가지고 있던 짐을 정리해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게

다였다.


  동네 사람들이 그 애들 때문에 못 살겠다고 쫓아내기도 하고, 경찰을 부르고, 구청에 전화하고, 시끄러웠다.

  그러고 나면 그 '아이돌'은 이사를 갔다.

  아파트 담은 그 여학생들의 낙서로 가득 차 있었다.  '00 내꺼.', '00야, 결혼하자.', '사랑해.' 등 온갖

낙서들이 벽을 메우고 있었다.

  그런 일은 근처 여기저기서 종종 일어났다.  

  "저 아파트에 HOT가 이사 왔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여학생들이 여지없이 모여들었다.


 

  그런 여학생들을 '빠순이'라고 불렀다. 예전에 '조용필', '남진', '나훈아'와 같은 가수들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을 '오빠부대'라고 했는데, 거기에서 '--빠'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들었다.


  또한  '덕후'라는 말이 들렸다. 일본의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초기에는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취미 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콘서트에 가고, 소장품을 모으며, 카페에 가입하고, 그들의 집

주위에 모여들어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일 따위 등을 하는 것이 '덕후'짓이다.


  요즘에는 누구의 '덕후'가 된다는 말이 10대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다. 최근 '트롯'의 열풍이 확산되면서

중장년층이 그 계열에 가세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임영웅'이라는 걸쭉한 가수가 있다.


  '덕후'라는 말은 '무엇에 빠진다.',  '무엇에 미친다'는 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빈자리는 많고, 그 빈자리로 들어와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려는 간절한

마음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으로 와서 무언가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는 헛헛함으로 생겨난 현상인 듯하다.

  그와 비슷한 말로 '--광', '--마니아' 등이 있다.


  무언가 빠진다는 말은 무언가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랑의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은,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으로 삶의 활력소가 되며, 무의미에서 유의미를 찾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무엇에 빠져 본 적이 있는가? 무엇에 미쳐 본 적이 있는가?


  지금 내가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부류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2년 전부터 문학에 대한 마음이 깊어져 책을 읽고 필사하고 사색하며,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다 쏟아

붓는 삶을 살고 있다. 몇십 년의 공백기를 금방 채울 수는 없지만,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것 중에 내가 찾아낸 가장 값진 일이라며 매달리고 사는 나도 '덕후'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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