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서
종교 모임의 한 분의 아들이 결혼한다고 해서 결혼식에 갔다.
그 모임은 연령층이 다양해서 4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까지 섞여 있었다.
식이 시작되니, 신랑이 들어오고 신부가 입장하는데, 아름다운 신부를 보다가 드레스가 참 예쁘다고
느껴졌다.
'우리 아들 결혼할 때, 예쁜 신부가 저런 드레스를 입고 우리 아들 옆에 서 있으면 좋겠다.'
군대에 간 아들이 스쳤다.
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40대 중반의 모임 막내 J가 말했다.
"아, 드레스 이쁘다. 또 한 번 입고 싶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J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결혼식? 드레스 입었었잖아?"
"드레스가 너무 이쁘니까, 또 입고 싶어지네요."
불과 나하고 7살 차이밖에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아들의 결혼식이 생각났고, J는 자기의 결혼식 때를 떠 올렸다.
40대와 50대의 차이?
같은 시대에 사는 연령 내에서도 경험에 따라 구별 짓는 가치관의 차이?
변화의 수용 능력에서의 차이?
'아, 내가 찌질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J가 부러웠다.
문화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이 공유하는 무수한 것 들 속에서 자신이 택한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 지적 수준, 창의적 활동 등의 결과가 자신과 남을 어떻게 구별 짓는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태도나 행동방식으로 해서 수많은 개인차가 생겨난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소통으로 인정하면 그것으로도 의미 있게 받아지는 것이다. 대리만족이란 것도 거기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나의 여가나 문화에 대한 태도는 순응과 절제하는 것이었다면, J는 자기 삶을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태도로 자기주장이 뚜렷한 것이었다. 그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오는 의식의 차이를 벌려 놓은 것은 것이 아닌가 한다.
J가 가진 자기애가 나에게 부재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주어진 삶의 양식의 틀 밖으로 한 발 내딛는 것도 더딘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를 찾아보려는 생각으로 나를 뒤돌아 보고, 주체적이고 깨어있는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을 한다.
솔직히 나도 그 드레스를 입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