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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Apr 12. 2022

제주도 여행에서

친구의 잔소리

  친구와 제주도에 갔다 왔다.


  반백 년 친구임에도 하룻밤도 같이 지낸 적이 없고, 목욕 한 번 같이 간 적이 없다. 같은 학교도 다니지

않았고, 동네 친구로 늘 옆에 나의 길의 동반자로 바람막이처럼 묵묵히 지켜준 친구였다.

  서로의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자식이었고, 자식들에겐 서로가 이모가 되어 형제처럼 살아왔다.

  맛있는 거 있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고, 좋은 것을 보면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고, 분신처럼 늘 마음 안에

가득한 친구였다.


  이번 여행에 마음이 들떴다. 세 밤을 같이 지내고 온다는 것이 어린 시절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렜다.


  일이 터진 것은 제주도에 가기 4일 전에 일어났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발목에 이상이 왔다.

  발목 접질리는 일은 내 발목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 나의 고질적인 병이었다.

  '아, 큰일 났다.'

  다른 날보다 심각하게 아픈 발목을 잡고 이리저리 주무르고 간신히 집에 왔다. 정형외과에 가면 분명

반기브스라도 하라고 할 터이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 치료를 했다.

  '친구에게 들키면 안 된다.'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로 전화가 왔다.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까짓 제주도가 문제냐? 니 발목이 문제지."

  "괜찮아, 내가 잘 치료하고 있어."


  친구는 공항에 내가 사려다 못 산 발목 붕대를 사 가지고 와서 공항부터 발을 동여맸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맨 처음 '곶자왈 도립공원'에 갔는데 거대한 숲에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며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다양한 식물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것 같아 나름 신비로운 원시림 형태의 숲이었다. 내내

자연의 숨소리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딱 맞게 찾아간 '가파도'에는유채꽃과 청보리가 한창이었다.

  날씨는 화창하지 않았지만 바람이 적었다. 이렇게 광활한 유채꽃과 청보리는 처음이었다.

  반은 유채꽃으로 반은 청보리가 눈에 담겨 싱그러운 봄소식을 한가득 몰고 왔다.

  저 청보기가 익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니 그때 '가파도'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연을 만끽하고 있을 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 친구!


  "거기 계단."

  "잠깐만, 앞에 뭐 있다."

  "조심해!"

  "천천히 가."

  "이쪽으로, 이쪽으로 와."

  "거기 걷기 힘들잖아."

  "왜? 아파?"

  "그거 줘, 내가 들고 갈게."


  나만 보며 내 행동을 쫓는 친구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제주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부터였다.

  '얘가 이렇게 잔소리 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를 걱정해 주는구나'하는 생각도 정도가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짜증이  났다. 다리를 다쳐서 온 여행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매사가 마음에 걸려 혹시나 나 때문에 여행을 망칠까 싶어 표시 내지 않고 속으로 눌렀다.


  결국 돌아오기 전 날 밤에 터지고 말았다.

  예민해져 밥이 잘 안 먹혔는데 호텔 가는 길에 차멀미를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친구는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차멀미했다는데 소화제 밖에 없더라고 소화제를 사 가지고 왔다. 나는 아무 말없이 마셨다.


  방에 들어와서도 친구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냥 놔두면 좋겠는데, 쉬어라, 누워라, 배 고프냐 등.


  "고만해! 나 좀 놔둬라." 소리를 내고 만 것이다.

  싸한 분위기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여행이 끝났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가 왔다.

  왜 자기보다 집에 늦게 도착했는지에 대해서 나는 설명해야 했다.


  반백 년의 세월이 참 사람을 많이 변하게 만든다.

  참 칼칼한 친구였다. 새침데기였다. 지금도 그리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 친구이다.

  눈에 그려지듯 서로를 그려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쌓인 것이 많은 가보다. 그게 세월인가 보다.


  혹시나 내가 더 다칠까 봐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

  나 때문에 여행을 잘못한 것은 아닌가? '다시는 너와 여행하나 봐라.' 순간순간 느꼈던 내 거친 감정이

사그라졌다. 미안함이 슬며시 올라왔다. 내 안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맘이 들어 전화를 했다. 잔소리꾼으로

변한 친구가 자신도 모르는 잔소리를 했다며 말한다.

  "나도 모르게 내가 잔소리를 했다. 미안하다."

  그 말을 들으니 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잘했니?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 - , 내가 더 미안하다."

  "걱정 마, 여행은 잘했다."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준 친구, 이보다 더 큰 울림이 어디 많겠는가? 긴 세월 오래갈 수 있었다는 것은

서로의 장, 단점을 알아,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어가고 건드리지 않을 것들은 건드리지 않아서 라는 생각을

한다. 친구를 생각하면 내 마음에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나는 내게 이 친구가 있다는 것이 뭔가 이뤄 냈다는 생각을 들 때가 많다.

  친구를 생각하는 이 시간,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내 친구, 그 친구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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