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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Apr 19. 2022

벚꽃이 지니 봄날은 가고

오늘이 참 황홀해요

  어두운 옷 밖에 모르는 내게 벚꽃 같은 옷이 있을 리 없는데, 환한 옷을 두리번거리고 찾아보던 날이었다.


  '벚꽃이 피었나?'

  발목을 삐끗해 조심하느라 산책을 줄였는데, 그 사이 벚꽃 피었을까 궁금해 산책길을 나섰다. 들길에 

벚꽃이 환하다.

  

꽃의 화려함을 눈에 담고 사진 찍다가 꽃구경하자고 친구를 불러 한가득 봄을 마음 안에 담았다. 벚꽃 향이 진하다.


  그런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변덕스러운 날씨에 꽃이 지고 말았다. 한창 이쁘게 피어야 할 꽃이, 봄비 

지나고 바람 불더니 꽃비는 길 속에 제대로 뿌려보지 못하고 한꺼번에 제 홀로 져 버렸다.

  머리 위에, 어깨 위에, 발 끝에 소복이 쌓이던 꽃잎들이 저물어지고, 봄날도 지고 말았다.

  갑자기 울컥했다.


  며칠 전에 지인 몇을 만나 이야기하는데 나이 지긋하신 노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요사이, 나는 오늘이 참 황홀해요."

  처음에는 조금 낯선 말이어서 '무슨 말이지?' 했다.

  "알 것 같아요."

  다른 지인이 맞장구를 쳤다. 이 선문답이 오갈 때 다시 노 시인이 말했다.

  "자고 나면 감사하고요."

  '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내 안에 담기는 순간이었다.

  나이를 먹으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나는 그렇게 들었다. 하루하루가 

선물 같은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황홀'이라는 말로 표현한 그 노 시인을 나는 참 많이 

좋아한다.


  보통 이맘때 벚꽃이 한창이었는데 이미 벚꽃은 지고 그 자리에 연푸른 잎새들이 메우고 있었다.

  벚꽃은 4월의 정령처럼 세상을 환하게 해 주다가 갔다.

  연푸른 잎새 사이, 꽃 진 자리가 오늘은 참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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