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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 May 27. 2022

패션디자인과 학생은 어쩌다 IT 기획을 하고 있나

첫 번째 서비스 '살리밍' 제작기 - 자취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졸업작품은 어떤 컨셉으로 할래?
졸업작품을 위해 이런 일러스트를 그려야 했다 (출처 : unsplash)

난 패션디자인과 학생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지금 졸업과제를 해내고 있는 내 손과 마음은 즐거운가? 졸업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버렸고 학생 신분의 벼랑 끝에 서서 나는 생각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 글에서 나는 나의 본업에 대한 길을 완전히 바꾸게 된 그 첫번째 '앱서비스제작'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자취가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불편함'이라는 메모장에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패션디자인과 학생으로서는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메모장에 적힌 불편함 중에서 가장 해결하고 싶었던 것은 '자취 초보가 겪는 어려움'이었다.


온 가족이 흩어지고 학교를 다니기 위해 홀로 집에 남아 자취 아닌 자취를 시작하며 집안일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맡게 되었다. 가사일은 내 삶의 질을 결정해주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는 산재되어 있었다. 제일 문제로 느껴졌던 것은 모르는 가사일은 검색을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예컨대 '수건 삶는 법'은 수건을 삶는다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검색할 수도 없다. 또한 가사일에 대해 검색해보면 블로그나 유투버마다 입장과 방식이 다 달랐다.


즉, 가사일이  가사일을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정돈된 플랫폼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내 삶에서의 결핍과 열정의 기회를 발견했다.



졸업하기 전에 나의 열정을 여기에 쏟아볼래

정확히 말하자면 열정을 쏟기보다는 생각을 현실화시키고 싶었던 욕구였다. 생각과 상상에서 그치는 것은 몽상가일 뿐이다. 그리고 이전의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통해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길 때쯤이었다. 초심자의 패기랄까 무서웠지만 무섭지 않았다. 단지 '1년 묵혀둔 하고 싶던 것을 드디어 한다.'라는 해방감에 신났을 뿐. 졸업 직전 마지막 방학에 나는 '살리밍'에 흠뻑 빠질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나는 어플을 제작했다

당시에는 기획의 'ㄱ'도 모르던 한낱 패션디자인과 학생일 뿐이었고, 타겟이나 컨셉, DAU라는 개념도 잘 몰랐다. 단지 당연히 필요한 작업들을 실행할 뿐이었다. 여기 백지의 머리로 서비스를 만들어간 다소 허술한 과정이 있다.


이 서비스를 사람들이 사용할까?

나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체계란 없던 터라, 최소한의 근거는 마련하겠다고 이 서비스를 사용할 잠재고객은 누구일지를 찾아보았다. 나와 비슷한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의 살림 관련 불편함을 호소하는 글을 수집했다. 

나를 위한 사업계획서

그리고 남에게 보여주기용이 아닌 '나를 위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다시 보니 정돈되지 않은 만큼 허점 투성인 데다가 시대의 흐름도 잘 봤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문서들이 내가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확신을 주고 그림을 그리도록 도와주었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

최소한의 확신을 얻은 후 바로 기획하는 앱의 구조를 그렸다. 

왼쪽 첨부된 이미지는 놀랍게도 현직 기획 및 디자이너의 외주 요청 물이다. 앱의 구조를 시각화한 이미지 파일을 들고서 해당 기획을 실현하기 위한 개발 외주비용을 여기저기서 알아봤다. 평균 개발비는 모르겠지만 2018년 여름이었던 당시에는 내가 구상한 내용을 실현하려면 대략 2000만 원 정도의 값을 지불해야 했다. 당시 2000만 원은커녕 1000만 원도 없었던 터라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거품은 싹 빼고 가장 핵심만 남겨둬야 했다. 그래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정보제공에 초점을 맞추어 앱을 재 기획했다. 정해진 레이아웃을 정해두고 저렴히 개발해주는 공장형 앱 제작업체를 찾아 그 레이아웃에 맞추어 서비스를 수정하고 살을 떼어내고 뼈대만 남겨 제작을 예산에 겨우겨우 맞출 수 있었다. 개발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고, 로고와 이름 앱의 간단한 디자인을 이틀 만에 해냈다. 그리고 드디어 개발을 요청했다.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생겼다. 나는 살림 초보이지만 살림 고수가 되어야 했다. 살림 관련 서적을 출판 시기와 무관하게 닥치는 대로 대략 10권 정도 구매했다. 그리고 알아보니 '정리수납 지도사 자격증'이라는 자격증이 있어 관련 인터넷 강의도 찾아서 수강했다. 100가지가 넘는 콘텐츠 주제를 리스트업하고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그 주제에 관해 책, 인강, 블로그, 유튜브를 넘나들며 공부하고 그 내용을 블로그 형식으로 정리하고 카드 뉴스로 요약했다. 콘텐츠를 목표한 주제별 6개씩 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런칭하기에 다다랐다.

런칭한 앱과 서비스 설명에 첨부했던 스크린샷

그렇게 상상하던 서비스를 2개월을 쏟아 만들어냈다.


산 넘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다음 산을 만나

1년간 그려왔던 상상을 현실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려왔던 것들과 함께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가 나에게 현실로 다가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서비스 제작과 콘텐츠 제작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3개월, 그 이후 3개월 동안은 학업과 병행하며 콘텐츠를 제작했으나 퀄리티가 내 성에 차지를 않았다. 그리고 끝이 없다고 느껴졌다. 꾸준히 글을 쓰기에 나는 '살림'이라는 주제에 그리 진심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문제점과 필요성을 느껴 시작했지만 당장에 계속 콘텐츠를 생산할 동력이 없었던 것이다. 

서비스 제작과 콘텐츠 제작은 다르다. 서비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고, 콘텐츠는 그 시스템 안에서 숨 쉴 주민을 만드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 구분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이 점을 간과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항상 부족했다

돌이켜보면 마케팅을 시도할 정도의 콘텐츠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자꾸만 서비스를 품 안에 숨겨두고 있었다.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검색해도 모든 살림 정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보니 내가 해온 것이 너무 작게만 느껴졌다. 

회고하자면 완벽한 것은 세상에 없다. 상상에서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내 품 안에서 세상으로 꺼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게 세상에서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앞선 내용을 포함해 입시문제 등의 이유로 나의 첫 서비스 제작기는 막을 내렸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낳고

살리밍과 함께한 반년이 끝난 지도 3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웃기게도 이후 코로나라는 대변화의 시기가 찾아왔고 내가 이 서비스를 지속했다면 아마 파도에 물살을 탄 듯나아갈 기회를 만났을 것이라는 상상도 하고는 한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 경험을 통해 다음 길을 찾을 수 있었고 그 길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만드는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웠어서 상상을 현실화하는 '서비스 기획'이라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산업디자인'이라는 두 번째 전공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지금 디자인과 기획을 하는 사람에 이르렀다. 그래서, 글의 첫 문장의 질문(난 지금 즐겁나?)에 답하자면 난 지금 나의 일을 해내는 내 손과 마음이 즐겁다.

경험이 최상의 증명이다.
나는 나의 길을 인도해주는
유일한 램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경험이란 램프다. 

-P. 헨리-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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