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의 목표

퇴직하는 순간 그냥 옆집 아저씨다

by 지금바로

어렸을 때 주위 어른들은 내 사주가 굉장히 좋다고 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선비'가 떠오르는 그런 느낌이었다. 재물운보다는 관운이 좋은 그런 사주였다.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때만 하더라도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였는데 지금은 적당히 일하면서 월급 받고 자기 인생 즐기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더 중요해졌다. 물론 진급의 가치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관리자가 되면 월급이 많이 오르지도 않고 책임질 일만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노동에 의한 임금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회사생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는 아직 고참들이 있다. 대부분의 그 세대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애들은 열심히 하지를 않아. 우리 때는 말이야..'를 외치면서 후배들의 업무 태도를 못마땅해한다. 어떤 고참들은 옛날에 자기들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되돌려 주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 후배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회사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권력이 평생 갈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사내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A 선배는 고참 세대들이 우러러보는 대상이었다. 하루는 감사기관과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감사기관에서 온 젊은 직원이 이 A 선배를 영혼까지 털어버렸다. 그것도 나 같은 말단 직원들도 보는 자리에서.


A : (회의실로 들어오면서) 꼭 제가 회의에 참석해야 되겠습니까?

감사기관 직원 : 본부장님 오시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렇게 늦게 오는 경우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예의 없게..


A : 감사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기관 직원 : 우리가 부탁 들어 드리려고 온 줄 아십니까, 말씀 똑바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A : 그냥 하는 소리 아닙니까.

감사기관 직원 :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불쾌합니다.


A 선배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내가 털린 것처럼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감사기관 직원이 어디서부터 기분이 나빠서 공격적으로 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벼르고 온 건지 회의 시간에 늦어서 그런 건지는 그만 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날 이후로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첫 번째는 '항상 겸손하자'는 것이다. A 선배는 평소에도 권위적인 모습이 몸에 배어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사람이 자기 아래인 것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감사 전 회의에 '귀하신' 자신까지 참석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본인 나름대로는 일침을 가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후배들 앞으로 부끄러운 상황까지 연출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자리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아예 다 포기해 버리고 '마이웨이'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너무 아등바등 올라가려고 애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진급을 하면 하는 것이고 안 되면 할 수 없고'라고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기로 했다. 어차피 우리 모두 퇴직하고 나면 아저씨다.


그리고 지금 시대의 내 사주는 더 이상 좋은 사주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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