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사용하는 물건들 중 별 이상이 없을 때는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마치 공기와도 같다고 할까!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약간이라도 탈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만 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변기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의뢰인은 변기가 막힌 지 삼일 정도는 되었다고 했다. 변기가 막혀서 뚫어보려고 뚫어뻥도 부어보고 세탁소의 철사로 된 옷걸이를 이용해서 쑤셔도 보고 공기를 압축해서 터트리는 압축기도 사용해 보았다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물이 안 내려간다고 한다. 변기에 무엇이 들어간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다. 의뢰인은 우리 손주가 뭔가를 넣은 것 같다고 했다. 손주장난감 중에 어떤 것이 없어졌는지 물었다. 의뢰인은 뭐가 없어졌는지 모른다고 한다. 손주는 돌이 지나 걷기 시작하는 2세 남아라고 한다.
의뢰인의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의뢰인과 약속을 한 오후 6시가 다 되었기에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문이 닫히려는 순가 엄마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눌러 문을 잡았고 엄마와 아기를 동승시키곤 "안녕~"인사를 나눴다. 아기를 보는 순간 "혹시~변기?" 했더니 "아~네!"엄마가 대답했다. "그럼 요 꼬마가 무얼 넣었나요?" "네 맞아요" 엄마가 대답했다.
변기에는 맑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한 번 더 물을 내렸다간 넘쳐흐를 것이 뻔했다. 관통기를 넣어 차분하게 회전시켰다. 관통기는 우측으로 돌려도 좌측으로 돌려도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며 뚫고 들어간다. 참 신기한 공구이다!. 한참을 뚫어도 꽉 막힌 변기는 요지부동이었다. 물도 전혀 내려가지 않았다. 이마에선 어느새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벌써 2시간째 변기와 씨름 중이다. 두 팔은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주인공인 꼬마는 변기 뚫는 것이 신기했는지 수시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손뼉을 치며 신이 나서 웃는다. 그럴 때마다 아기엄마가 안고 데려갔다.
의뢰인과 상의하여 변기를 뜯어내기로 했다. 변기를 거꾸로 엎어 놓고 뚫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관통기는 꺾어지는 부위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벌써 밤 9시가 다 되어 간다.
의뢰인을 불렀다. 변기가 뚫리지 않으니 새로 설치해야 할 것 같다고 하니 과정을 지켜봤던지라 더 이상 애쓰지 말고 그렇게 하자고 한다. 변기는 기본 무게가 있어서 설치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망치를 들고 의뢰인(하부지)과 너부러진 변기 앞에 섰다. 변기의 물이 내려가는 이 꽉 막힌 꾸불꾸불한 부위를 깨보기로 한 것이다. 망치로 변기를 가격하니 "쨍"하며 맑은 소리를 냈다. 다시 일격을 가하니 "퍽"하며 금이 갔다. 다시 마지막 일격을 가하니 "쩍"하고 변기가 깨졌다. 그 안엔 변기를 막기에 알맞게 생긴 아기 주먹만 한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심지어 잘 빠지지도 않았다. 망치로 톡톡 가격해도 잘 빠지지 않았다. 좀 더 힘을 가해 망치질을 하니 툭 하고 떨어지며 떼구루루 굴러 떨어졌다. 이것은 다름 아닌 나무로 된 공이었다. 의뢰인(하부지)이 깜짝 놀라며 공을 비닐로 감싸서 아기와 엄마가 있는 거실로 들고나갔다.
"이게 도대체 뭐니? 이게 왜 여기에서 나와?" 하부지의 언성이 높아졌다.
"어~ 아기들 장난감 교구야"
아기엄마는 하부지와는 달리 놀라지도 않았고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대답은 무덤덤하고 평온했다.
"아기들이 변기에 뭔가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내려가는 것이 신기한지 종종 막히는 일이 생깁니다. 여러 댁을 다녀보면 그냥 흔한 일입니다" 했더니 하부지의 흥분이 좀 누그러드셨다.
다음날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금요일밤 교체할 변기를 들고 아가집에 방문했다. 변기를 다는 동안 아기는 신기했는지 수시로 오가며 "아찌 아찌"를 부르며 웃고 신이 났다. 짓궂게 웃는 아기를 보니 금방이라도 변기에 무언가를 넣고 물을 내릴 것만 같았다.
변기가 예쁘게 설치되었고 아기와 엄마는 불편함이 해소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는지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