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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Sep 15. 2024

전문가 아닙니다.

<집수리 마음수리 2>

중년의 힘 있는 여성목소리는 방충망을 설치하느냐고 물어왔다. 설치해 드리고 있다며 규격이 어느 정도인지 몇 개정도 필요한지 물었다. 규격은 그렇게 크지 않다며 방 2개와 주방, 화장실에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방충망 전문가들에게 연락을 해도 못한다고 했단다. 도대체 뭐가 어떻길래 못한다고 했을까! 궁금증이 들었다.

비탈길에 있는 빌라 1층인데 입구에서는 1층이지만 반대쪽에서는 3층높이 정도는 된다고 했다. 높은 쪽은 방범창이 없지만 낮은 쪽에는 방범창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방충망틀을  뗄 수도 갈 수도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이 주변에 그런 곳에 집을 지을 건축업자가 있었을까? 의문이 들어 10고개 하듯 위치가 어느 동네인지 또 물었다. 서울이라고 했다. 아차 싶었다.

전화목소리는 내게 방충망 전문가냐고 물어왔다. 이때다 싶어서 나는 "방충망 전문가 아닙니다" 하고는 얼른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블로그 봤습니다. 다 포기한 방충망 작업해 주신 거 알고 있습니다"

"그거는... 하도 부탁을 하셔서요"

"어려운 거 하는 게 전문가시죠!"

 "ㅠㅠ 전문가는 그런 작업 안 합니다. 돈 안 되는 작업보다는 평범하게 할 수 있는 거 집중적으로 하는 게 전문가죠!"

"어려운 거 해주는 게 전문가죠!" 의뢰인은 절실했다.

왠지 제발을 찍는 느낌이 들었다.


의뢰인은 서울 용산이라고 했다. 여비 인건비 충분히 줄 테니 제발 와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비용을 충분히 지불하겠다고 해도 어느 정도이고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면 어떤 변수가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런 난해한 작업은 혼자 하기 어렵기에 누군가는 대동해야 한다. 방충망4개하러 가는데 사람까지 쓴다면 당연히 손해인 것이다. 또 와이프를 대동해야 한다.


좁디좁은 언덕과 골목길을 고개운전을 해가며 현장에 도착했다. 의뢰인의 빌라는 생각보다 경사가 가팔랐다. 애초에 계획했던 방법을 바꿔 방충망틀을 분해해서 빼내고 우연성 있는 방충망으로 갈고 틀을 넣고 다시 조립하려 했다. 주변 자재상을 검색해 고개를 넘고 골목을 지나 자재를 구입해 오느냐 땀이 흐르고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맞지 않았다.

다시 처음에 계획했던 방법대로 알루미늄 몰딩을 사용해서 방충망을 설치했다. 이 방법이 맞았다.

오기 전에 방충망 공장에들러 조언을 구했으나 스카이(고소작업용 사다리차)를 불러 다시 설치하는 방법 이외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비용이 지금 견적의 몇 배로 너무 커지게 된다.

작업은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어야 한다.

한창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주차해 놓은 장소에서 차를 빼라는 것이다. 이 좁디좁은 서울땅에 어디다 주차를 한단 말인가?

사설주차장을 찾아갔다. 예약 이외엔 안 받는다고 한다.

공용주차장을 찾아갔다. 거주자지정으로 운용되어 안된다고 했다.

구청에 전화를 해도 방법이 없었다. 주차를 해 놓으면 주차딱지를 떼이거나 혹은 견인까지 당한다면 더 큰일이 생기는 것이다. 작업보다 주차가 더 힘들다니!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마침 공사 중이다 퇴근한 공영주차장 앞에 주차를 했다.

정오에 도착해서 방충망설지가 마무리될 때쯤 이미 저녁 8시가 되었다. 의뢰인은 작업에 매우 만족해하며 풍성하게 저녁을 챙겨주신다.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다 의뢰인의 투병이야기, 꿈을 향해 한도전 중이라는 것과 외국 살다 오셨다는 것 등 많은 무용담을 들었다. 아쉽지만 더 늦기 전에 집으로 향해야 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오전 10시에 출발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작업이 잘되어 만족해하는 의뢰인을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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