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2>
요즘의 세탁기들은 용량이 커지면서 크기도 제법 커지고 있다. 기존 아파트들의 세탁실이 좁아 수도꼭지도 납작하게 바꾸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도 한다. 세탁실의 세탁기가 올라가는 단이 좁으면 새로 구입한 세탁기의 네 다리가 다 올라가질 않게 된다. 이럴 때면 짧고 비좁은 세탁실 단을 넓혀야 한다.
의뢰인은 베란다의 세탁기를 놓을 자리가 좁다며 원래부터 있던 빌트인 수납장과 김치냉장고를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세탁기를 놓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폭이 좁아 세탁기가 올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로세로 200mm의 타일을 한 칸을 더 덪붙여야지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사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빨래를 하지 못했다며 최대한 서둘러서 해달라고 한다. 와이프를 대동하고 수납장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이제 제법 전동드릴을 사용하는 법이 익숙한진 시키지 않아도 나사못들을 잘 풀어낸다. 풀어낸 수납장의 철재류 경첩들과 나무 문짝들을 분리하여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수납장이 해체가 되고 나니 아파트를 처음 지을 당시의 바닥이 드러나고 20년 가까이 된 케케묵은 먼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먼지들은 20년이란 세월만큼 바닥에 유착되어 잘 떨어지지도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세탁기를 놓는 단을 넓히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시멘트몰탈을 하고 하루동안 양생을 거쳐 타일을 붙인다. 그 후 3일 정도는 더 양생을 하고 세탁기를 올려야 덜컹거리는 세탁기에도 잘 견디고 오래오래 튼튼하게 지탱해 줄 것이다. 세탁기 단을 넓히는 중에도 의뢰인의 집은 분주했다. 새로운 에어컨을 놓느냐 커다란 박스가 들어오고 기사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의뢰인이 세탁기 단을 놓는 것이 궁금했는지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세탁기 단을 자신의 집에 마음껏 놓는다는 것은 집주인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기도 하다.
집을 매입했는지 궁금해서 의뢰인에게 물었다. 의뢰인은 집을 사느냐 너무 무리해서 수중에 현금도 거의 떨어졌다고 한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집을 샀지만 너무 무리했다고 한다. 소위 영끌을 한 샘이다.
집을 사고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했다. 빨래를 하고 싶어 세탁기를 들이고 싶어도 세탁실이 좁아 단을 넓혀야 했다고 한다. 날씨가 더워 에어컨도 있어야 하고 집을 이곳저곳 손봐야 해서 돈 들어갈 일이 태산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도 세탁실을 넓히는 것이 급했는데 바로 작업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삿집은 빨래가 태산같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무더운 날씨에 세탁을 하지 못한다면 손빨래라도 해야 할 판이기에 서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뢰인은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잠을 자야 할 시간인 것이다. 낮에 체력을 충전하지 못하고 야간근무에 들어간다면 피로도가 어마어마하게 클 것으로 생각되었다. 문득 물류센터에서 야간근무를 하다 쓰러졌다는 뉴스가 생각이 났다.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들어가 쉬라고는 했지만 지금은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이 끝나갈 무렵 의뢰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주말에 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거실 화장실의 변기가 고장이라고 했다. 전등도 뭐가 문제인지 깜빡거리는데 걱정이라고 한다. 집을 사고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쓰였다.
시간을 내어 의뢰인의 집에 다시 방문을 했다. 화장실 변기의 부품을 갈다 보니 세면대가 덜렁거리며 실리콘이 떨어진 것이 보였다. 세면대 지지대를 타공 해서 다시 고정하고 실리콘이 떨어진 부분만 작게 손을 봤다. 깜빡이는 전등을 손보고 나니 화장실을 사용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수리비는 최소한의 금액만 청구했고 결제는 월급이 들어오면 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세탁실이 궁금해서 확인해 보았다. 새로운 세탁기가 떡 하니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와이프는 언제 오냐고 했더니 아직 여자친구도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