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거실에 있는 베란다와 통하는 커다란 창을 열고 싶다고 했다. 커다란 베란다 창을 열지 않은지는 이미 4년이 지났다고 한다. 4년이란 세월이 짧지 않기에 그 오랜 시간을 창을 열지 않고 보냈을까 의문이 들어 이유를 물었다. 의뢰인은 그곳에 김치 냉장고를 두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치냉장고를 치우고 문을 열려했으나 열리지 않아 그냥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요즘,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더워도 이렇게 무더울 수가 있을까? 의뢰인도 창이 열리지 않는 답답함을 참다 참다못해 열고 싶었다고 했다.
의뢰인은 휴가를 맞아 문을 열기 위해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고 시도해 보았다고 한다. 유튜브에 유리 압착기를 창문에 붙이고 힘차가 당기면 열리는 동영상이 있어 따라 했다고 한다. 창은 들썩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방법은 안쪽에 락킹기어가 체결되어 있는 나사못들이 강압적으로 뽑혀 나와야 성공하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락킹기어의 체결부위를 뜯겨내어 파손시켜야 열리는 방법이다. 뽑힐 때까지 잡아당겨야 하는데 의뢰인과 나와의 힘을 합쳐도 힘든 작업이다. 의뢰인은 에어컨 수리가사가 왔을 때도 부탁하였으나 손잡이를 뜯어보고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갔다고 한다.
방문하여 살펴보니 베란다문은 손잡이가 뽑혀 나가 없었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의 락킹기어를 살펴보다 특이점을 발견했다. 보통의 락킹기어는 락이 걸리는 훅의 중심축에 체결 볼트를 고정하게 되어 있는대 이 창에는 그 흔적이 없었다. 그 중심축을 뚫어 축을 없애버리면 락을 걸어주는 훅의 중심이 무너지며 문은 열리게 되어 있다. 난감했다. 의뢰인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창에 구멍을 내어도 되겠냐고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문이 열리면 좋은 일이고 안 열려도 창에는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잠시 고민하다 구멍을 내도 좋다고 한다. 락킹기어의 훅의 중식축을 측정하고 드릴비트로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잘 뚫리던 타공이 갑자기 걸려 헛돌기 시작했다. 다시 역으로 회전시켜 풀었다가 뚫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구멍이 뚫려 상단에 하나 더 뚫었다. 락킹 훅은 상하로 달려있기 때문이다. 의뢰인의 아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의뢰인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창호 하나에 한두 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추가로 타공한 자리
구멍이 뚫리고 힘껏 문을 당겼으나 열리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예상대로라면 문이 활짝 열렸어야 하는데 말이다. 타공 되어 있는 홈에 드라이버를 집어넣고 좌우 상하로 움직여 보았다. 순간 툭 하며 락킹이 풀렸다.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의뢰인을 불렸다. 문이 열린 것을 보더니 어느새 의뢰인의 아내도 달려 나왔다. 의뢰인의 아내가 한마디 던졌다.
"4년 만에 문이 열렸어요"
이 문이 4년 만에 열리다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뢰인의 아내는 문에 구멍을 뚫는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 지장 없이 문이 열렸으니 미소가 활짝 피었다.
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4년 전엔 이 문을 통해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더운 여름도 잘 났었다고 한다. 이 무더운 날씨에 문이 안 열리니 얼마나 덥고 답답했을까! 문이 닫혀 있던 좀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다음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새로운 손잡이를 교체했다. 뚫어 놓은 구멍들은 감쪽같이 손잡이 안으로 감춰졌다. 문을 자연스럽게 여닫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집이 건강을 되찾은 듯 살아난 것이다.
일을 하다 가끔씩 검은 물체가 주위를 맴돌다 사라지곤 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지금 이 순간도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물체는 착각이 아니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온몸이 새까만 고양이가 일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름은 코코 수줍음이 많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신기하다는 듯 열린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