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서 자재를 챙기다 한통의 전화가 왔다. 부동산이라며 한 번 볼 수 있는지 물어왔고 수리의뢰를 부탁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동탄의 한 아파트 단지의 세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해당 날짜에 방문하였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고 세대에 임차인이 입주하기 전 낡고 망가진 부분들의 수리를 의뢰받았다.
전등, 화장실 집기류, 싱크대, 틀어진 도어 등을 보다 우리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 그 방의 한쪽 벽면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벽지는 벽면에서 반쯤 벗겨져 있었다. 석고로 마감된 축축하게 젖은 벽면에서는 심하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퀴퀴한 냄새가 심하게 풍겨 나왔다. 누수가 생긴 것이다. 누수는 원인이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위층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이번경우는 어디에서 생겼는지 찾고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피해를 입은 세대의 아래층에서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속해서 같은 위치에 같은 벽면에 누수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때마침 관리사무소에서 사람이 방문했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공용수도배관이 복도에 층층마다 있는데 그곳에서 누수가 발생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한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곰팡이가 난 벽을 보더니 물은 새지 않을 테니 도배만 다시 하면 될 것 같다고 한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서로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한 마디씩 한다. 곰팡이가 가득 핀 벽에 도배를 하면 다시 곰팡이가 배어 나올 텐데 그럴 수는 없다는 반응이었다. 곰팡이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석고로 마감된 벽에 곰팡이가 발생했다면 뜯어내고 다시 공사를 해야 뒤탈이 없어진다.
공용배관에서 누수가 발생했으니 배상은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된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 놓기 때문에 보험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집주인이 관리사무소로 가서 피해를 입은 진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내게 같이 가자고 한다. 얼떨결에 동행을 했고 벽면 공사를 맞게 되었다. 벽면이 크지 않아 혼자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요즘 같은 날씨에 혼자 하다간 무리가 되어 더위 먹기 십상이었다. 두 명이 작업할 수 있는 견적서를 작성해서 보험사에 제출했다.
임차인이 이사 오는 날짜가 정해져 있기에 그전에 작업이 신속히 진행되어야 한다. 나흘 후 보험사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견적서의 금액을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예상대로 가격을 낮추자는 요구다.
작업은 먼저 누수피해를 입은 벽을 뜯어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벽면이 빠르게 마르고 다음공사를 할 수가 있다. 뜯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사 하루, 마르기를 여러 날 기다렸다 석고마감공사와 기타 마감재(몰딩) 공사 하루, 다음 도배작업이 들어가야 했다. 공사를 이어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견적을 줄일 수 없다고 보험사직원을 설득했다. 그래도 견적은 줄여야 했다. 하루가 급했다. 얼른 벽을 뜯어야 한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아내를 대동해야 한다.
토요일 아무 일정도 잡지 않았고 아내와 해당 아파트에 가서 철거 작업을 계획했다. 벽면만 조심스럽게 뜯을 계획이니 별다른 소음은 나질 않을 것이다.
아파트 입구의 차단봉 앞에서 관리실을 호출했다. 관리실직원은 무슨 일로 방문했냐고 물었고 우리는 해당세대에 욕실장을 달러 왔다고 했다. 어제 설치하다만 욕실장을 마무리하고 벽을 뜯을 계획이었다. 관리실 직원은 작업을 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소리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관리실직원은 이 아파트는 입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토요일 일요일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수많은 곳들을 다녀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관리실직원은 스피커를 통해 규정이 그러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것도 후진을 해서 말이다.
아파트 입구는 좁게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제도 실수로 다른 아파트로 들어갔다가 관리실을 호출해서 잘못 들어와서 돌려나가겠다고 했더니 차단봉을 열어줬고 차를 돌려 나왔다.
이 아파트는 후진을 해서 나가라고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후진을 해서 나오다 뒤에서 차가 들어와 정차했고 들어오던 차는 입주민 전용으로 들어갔다. 이러다 사고가 날 수 있겠다 싶어 차를 전진하여 다시 관리실을 호출했다. 차단봉을 열어주면 차를 돌려 나오겠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열어주면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이다. 후진을 해서 나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차단봉을 열어주면 돌아 나오겠다고 했으나 같은 말만 단호하게 반복했다.
누군가 절규하며 "나도 아파트 산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후진해서 나가다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뒤라도 봐달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한다. 뒤로 후진해서 나가다 사고라도 나면 책임질 거냐고 했더니 안 나게 나가라는 말을 한다.
후진으로 역주행을 해서 나가라는 말을 하다니, 상식밖의 말을 태연이도 그것도 너무 열심히 하고 있었다.
자신의 임무와 책무를 성실히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전에 상식적이어야 하지 않겠나! 상식밖의 일은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비상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입구는 굽은 도로로 들어오게 되어 있어 더욱 조심해야 했다. 여느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뒤쪽엔 보행신호도 횡단보도도 있었다. 뒤에서 들어오는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후진을 시도했고 후진 역주행을 통해 도로까지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