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는 예약을 받으면 제품을 미리 만들어 놓거나 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자재나 부품들은 미리 준비해 놓기는 한다. 그렇다고 자재나 부품이 상하거나 유효기간이 짧은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부담은 적은 편이다.
'2화 하기 어려운 일'도 한주 전에 미리 약속을 했던 예약건이었다. 앵글선반자재와 벽걸이 선반자재를 미리 준비하고 빨래건조대도 준비했다. 약속날짜 전날에 연락을 하고 예약날짜를 재확인 후 해당 날짜에 방문하여 약속된 일을 처리해 드렸다.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선반을 달았다'는 내용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블로그에 선반을 달아드렸다는 글을 보고 연락을 하셨거니 동네 플랫폼에 올라온 글을 보고 연락을 한 것으로 예상되었다. 남자분은 자신은 미용일만 한터라 집수리에 필요한 경험이 전무하다며 공구도 없고 사용할 줄도 모른다고 했다. 사회초년생인 따님이 일주일 후에 작은 가게를 오픈하는데 매장을 꾸미고 싶다고 했다. 옷걸이 행거와 선반을 좀 달아야 하는데 가능하겠냐는 질문이었다. 파이프옷걸이 15개 이상과 선반은 5개 이상이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의뢰인은 콘크리트벽면을 뚫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다며 와서 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파이프옷걸이의 한쪽 브래킷엔 콘크리트나사못이 4곳이 고정된다. 양쪽을 고정하면 8개의 나사못을 고정해야 하니 콘크리트벽면을 8곳을 뚫어야 한다. 파이프옷걸이 15개면 콘크리트 벽면에 (15X8=120) 적어도 120곳을 타공해야 한다. 그것도 의뢰인이 원하는 부위에 설치를 한다면 측정을 해야 하기에 시간이 제법 걸리는 작업이었다. 거기다가 선반까지 5개 이상을 설치한다면 하루는 걸리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의뢰인에게 작업량과 계획을 설명을 하니 목소리가 심각하게 변했다. 설명을 듣고 난 의뢰인은 쉬운 일이 아닌데 너무 쉽게만 생각했다며 비용을 물어왔다. 비용은 하루 일당정도는 들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다른 곳에 문의를 해보아도 좋다고 했으나 의뢰인은 신뢰가 간다며 꼭 작업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한참을 통화했고 일주일 후 화요일 아침에 방문하여 일을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단 조건은 의뢰인이 작업을 조금씩 도와주는 조건을 달았다. 의뢰인도 흔쾌히 좋다고 하였고 대화도 잘 통하여 기분 좋게 예약을 잡았다.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하필 예약을 잡은 그날 일을 해달라는 의뢰가 몇 건 있었다. 미리 정한 예약이 있기에 작업을 다른 날로 바꾸거나 다른 곳을 알아볼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시간은 금방 흘러 금세 예약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늦은 오후인데도 의뢰인으로부터 상세주소가 오질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주소를 알아야 일을 갈 수 있는데 말이다. 의뢰인에게 내일 있을 작업이 확정적인 것이냐고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죄송하다며 다음기회에 연락을 하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오! 이런! "
일정을 미리 비워두었는데 연락이 없어서 먼저 연락을 했다고 문자를 남겼으나 답장은 없었다.
순간! 아~ 노쇼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과 김밥집에 노쇼로 피해를 입었다는 기사를 보았었다. 이번 경우는 특별한 피해는 없었지만 하루 일이 비게 생긴 것이다. 요즘들어 경기도 어렵고 장맛비가 계속되어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꾸준히 있긴 했었다. 그런데 하루 일정을 다 비워놓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이게 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도 신뢰가 간다며 꼭 나한테 작업을 맡기고 싶다고 약속한 상태라 더욱 마음이 상한 것 같았다.
내일은 다른 일들로 채워질 테니 낙담은 하지 말자고 마음을 달래 보았지만 배신감 같은 묘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급하게 처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장맛비가 계속되는 가운데 자재를 구입하고 제품을 알아보고 새로운 의뢰인과 상의를 하고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 일은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어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지나간 어쩔수 없는 일이 있을땐 그 일을 잊으려 하지 말고 다른 일에 집중하라고 말하곤 했다. 정답은 없지만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세찬 장맛비가 시원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