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이 새로 이사하는 집은 방이 4개, 커다란 거실에 베란다가 큼직큼직했다. 베란다 한쪽을 수납 할 수 있도록 선반을 놓는 것과 세탁실 좌우로 키보다 높은 선반을 다는 것, 커다란 베란다에 빨래건조대를 설치하는 의뢰였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선반은 철재조립 선반으로 튼튼하게 준비했고 선반은 튼튼하고 경제적인 제품으로, 빨래건조대는 햇볕과 세월에 부식이 적은 올스텐으로 준비하였다.
잔일이 많은 작업이라 이번에도 아내를 대동했다. 일하고 나면 시원하고 맛난 음료를 사주겠다고 꼬드겼더니 아내가 한심한 듯 쳐다본다. 어차피 함께 가기로 해놓고 미안하니 '또 저런다'라는 표정이다.
선반은 공간활용에 최적화되어 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집은 유형으로 된 바닥과 벽, 천장으로 되어 있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룬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바닥과 키높이에 맞는 벽 공간 위쪽으로는 잉여공간이 남는다. 그 잉여공간을 잘 사용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선반이다.
우리는 먼저 빨래건조대를 설치했다. 의뢰인과 원하는 위치를 상의하고 천장을 측정하고 해머드릴로 타공을 했다. 방에서 보았을 때 베란다의 빨래가 외부경관을 가로막지 않도록 좌측으로 약간 치우치게, 빨래에 햇볕이 잘 들도록 베란다 중심에서 창쪽으로 약간 가깝게, 의뢰인의 의도에 맞게 빨래건조대가 달렸다.
이번엔 철재 선반을 설치했다. 베란다 치수는 가로 1300mm에 높이 2600mm이었다. 이곳에 물건을 놓는다면 바닥에 몇 개 놓지 못할 것이다. 윗공간은 활용을 할 수 없게 된다. 의뢰인의 의도에 맞게 가로 1200mm에 깊이 400mm, 높이 2100mm의 선반을 둘로 나눴다. 600mm에 400mm를 두열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공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가 있게 된다. 아내가 옆에서 선반자재들을 척척 챙겨주니 금세 선반이 완성되었다.
다음은 세탁실이 있는 베란다에 단칸선반을 설치했다. 사람 키보다 높은 윗공간을 활용하고 싶다는 의뢰인의 주문에 따라 선반 4개를 윗공간에 나란히 설치했다. 레이저 레벨기와 줄자를 이용하여 수직과 수평을 맞추고 간격에 맞게 타공을 했다.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게 된다면 선반은 삐뚤게 달려 여간 보기 싫은 것이 아니게 된다. 측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었고 우리는 땀에 범벅이 되어갔다.
요즘 장마철이라 덥고 습하기에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몸은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축축한 반면 입안은 메마른 사막마냥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 체력이 그새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부터는 정신력 싸움이 된다.
선반이 다 달려갈 때쯤 주위를 맴돌던 의뢰인이 걱정스럽게 한마디 했다. 더운 날씨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인 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곤 커튼을 세탁할 수 있도록 때어 달라는 것과 서랍장과 진열장을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 부부가 흔쾌히 승낙을 했더니 더운 날씨에 짜증도 안 내고 사이좋게 일을 하냐며 의뢰인이 놀라워한다. 새로 이사하는 집에 행거를 설치하던 의뢰인의 아들과 남동생이 더위에 치쳐 짜증을 내며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퍼진 상태라고 작게 귀띔해 준다. 그들은 서랍장과 진열장을 옮기면 바닥을 끌어야 해서 상처가 나기 때문에 안된다는 이유를 들며 짜증을 폭발했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선반을 포장했던 커다란 박스를 가져다 서랍장 밑에 깔았다. 서랍장을 밀어 바닥에 상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기니 의뢰인이 놀라워한다. 나는 사다리에 올라가 커튼을 때었고 아내는 의뢰인과 함께 커튼핀을 뽑아 분리하여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리곤 의뢰인께 우리가 이 더운 날씨에 짜증과 다툼 없이 일하는 비법을 귀띔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먼저 존칭을 쓴다는 것이다. 서로 힘들고 지칠 때 서로의 감정을 도발하지 않고 존중하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존칭을 쓴다고 했더니 의뢰인은 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놀라워한다. 그게 되느냐는 반응이다. 글쎄... 되든 안되든 시도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아들?(웃음 가득한 미소로) 이것 좀 해줄 수 있겠어요?"
엄마가 더위를 먹었나 할 수도 있겠다.
"동생?(웃음 가득한 미소로) 힘들지! 이것 좀 옮겨 줄 수 있겠어요?"
누나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당사자도 전신에 소름이 쫙 돋으며 민망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때 반복적으로 계속해야 좋은 습관을 들이기 쉽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고된 일을 하는 것보다 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습관은 가르쳐 줘도 들이기 어렵고 안 좋은 습관은 안 가르쳐 줘도 어느새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