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공업자 Jul 06. 2024

이미 전문가

<집수리 마음수리>

여러 집을 방문하다 보면 집이란 정형화된 구조에 정형화된 집기들로 구성되어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평에 또는 평방미터에 방이 몇 개, 욕실 몇 개, 주방, 앞뒤베란다, 창고 등이 대표적이며 이것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지각색의 자재들이 자리를 잡고 기능을 해야 한다. 욕실엔 타일이 마감되어 있고 좌변기, 세면대, 욕조, 거기에 작은 창이 하나 나 있어 환기를 돕는다면 그것만큼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듯하다.


어느 아파트들 욕실엔 이 작은 창이 나 있는 곳들이 있다. 화장실 환기가 잘 되고 외부에서 아무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이 작은 창을 통해 바깥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면 5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을 듯싶다. 작은 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욕실의 가치가 올라간다.


대부분 이 욕실의 작은 창은 프로젝트창으로 되어 있다. 작은 통창을 아래쪽 손잡이를 좌측이나 우측으로 돌려 밀면 밑부분이 잠금장치가 해제되면서 바깥쪽으로 창이 열린다.

한 번은 이 창의 손잡이가 부러졌다며 수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10월이라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이 창이 꼭 닫히지 않는다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것이다. 창의 손잡이가 부러지니 창이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여느 프로젝트 창문 손잡이와 달라 보이질 않아 금방 수리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손잡이를 구해다가 달아보려 했으나 규격이 맞질 않았다. 시중 손잡이 보다 결림부위가  짧았으며 문과 창틀 사이가 더 길었다. 손잡이를 때어 자재상에 방문하여 같은 규격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찾을 수밖에 없어 틈틈이 인터넷을 뒤졌다.

 

앗! 그 손잡이다!. 인터넷을 보다 몇 년 전에 같은 손잡이를 수리한 내용이 있는 글을 읽고는 그분께 쪽지를 보냈다. 답장이 없기에 올라온 연락처로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았다. 이를 어쩐다... 손잡이가 없으면 창을 당겨 잠가야 하는데 꼭 닫을 수가 없게 된다!

한동안 계속해서 인터넷을 헤매고 주변에 있는 집수리 사장님들께 부탁도 해 보았지만 그 손잡이의 정체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머릿속에 번쩍하는 한 생각이 떠 올랐다. 창호업체야 뭐 LG, 현대 한화, KCC 등 큰 메이저급 회사들이 있으니 홈페이지를 싹 뒤져 보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어느 홈페이지에서 그 손잡이를 찾았다. 정확이 그 손잡이였다.


당장 해당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재고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전화벨이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홈페이지에 있는 그 손잡이를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동안 찾느냐 마음고생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손잡이를 왜 인터넷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수요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본사에서만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손잡이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당장 그 손잡이를 주문하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디어 기다리던 손잡이가 도착했고 의뢰인의 댁에 바로 방문해서 교환해 드렸다. 그 짧은 작업시간에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듯 가벼워졌다. 아쉽게도 수리비용은 처음 견적한 몇만 원을 받아야 했다.

 

이 손잡이를 통해 고생한 별것 아닌 경험이 있어 혹시나 필요로 하는 세대가 있을까 싶어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그 이후 이 손잡이가 필요하다는 문의가 몇 건이나 있었을까? 단 한건도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쇠로된 손잡이가 부러질리가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나 별것 아닌 손잡이는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최근 블로그에 별것 아닌 손잡이 글에 최초로 누군가 댓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저희 집도 롯데캐슬인데
딱 저 손잡이를 못 찾아서 헤매고 있답니다ㅠㅠ
어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글을 남긴 블로그에 방문해 보니 부산에서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어 바로 답장을 했다. 그리고 손잡이를 구입가능한지 손잡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 보았다. 아직 그대로 있었다.

부산에 답장을 했다. 해당손잡이 회사의 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링크를 보냈고 그 많은 항목 중에 어디에 있는지 찾아 들어가는 방법도 사진을 캡처해서 순서대로 정리하여 같이 보냈다. 욕실 작은창에 손잡이가 없다면 작은 창은 잘 닫을 수가 없기에 간절했을 것이다.

얼마 후 부산에서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꼭 성공하라는 응원을 남겼다.


욕실의 작은 창에 손잡이가 부러졌다면 창을 잘 닫을 수가 없게 된다. 창은 애물단지가 된다. 애물을 애정어린 애(愛)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전문가에겐 별것 아닌 것들에 초보에겐 몹시 힘든 일이 되기도 한다. 초보의 고뇌를 거쳐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이다. 초보는 고생과 고뇌의 과정 속에 많은 것을 배워 나간다. 

자신 속에 있는 사소한 경험들을 글로 남기는 번거로움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자신에겐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들은 이미 그 분야에 전문가일 수 있기 때문다. 사소한 손잡이 수리경험도 누군가에겐 절실히 찾는 그것일 수 있기에 글을 남긴 것이 도움이 된 것처럼 말이다. 

누구든 자신 속에 있는 사소한 경험들을 글로 남기는 번거로움이 이미 전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