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공업자 Sep 01. 2024

절묘한 타이밍

<집수리 마음수리>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아파트 지상주차장엔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는 계속되었다.

"캠핑 가기 좋은 날인데 차들을 보니 다들 집에서 휴일을 보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인의 아파트 동 앞에 다다라 세대호수를 호출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앗 이 기분은 뭐지? 분명 어제 나눈 채팅에는 아침 9시에 방문해 달라고 했었는데... 다시 세대를 분명하게 누르고 호출버튼을 눌렸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침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어 현관이 열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의뢰인의 층수를 누르고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전날 저녁 의뢰인은 화장실 좌변기에서 물이 차지 않으며 계속해서 새어 나온다고 했었다.  좌변기 물탱크에 물이 차지 않으면 변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의뢰인은 일요일 아침에 수리해 줄 수 없겠느냐며 부탁해 왔었다. 평소엔 잘 모르다 변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여간 불편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원활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일요일 아침에 수리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의뢰인의 탄탄한 철제 현관문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몇 번을 더 호출하다 의뢰인의 견고한 철제현관문을 찍은 사진을 문자로 남겼다.

공구가방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지난주 수요일 이틀이면 될 일을 어제 토요일까지 나흘로 연장된 이삿집 수리를 하느냐 피로가 많이 쌓인 듯했다. 이 시간에 장을 부리며 잠자리에 있었으면 피로가 덜 했을 텐데 일요일 아침부터 노쇼를 당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몇 십분 후면 의뢰인이 왜 그랬는지 사연을 알 수 있겠지만 쌓인 피로도만큼 발걸음도 무겁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막 들어섰을 때 의뢰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벨소리를 못 들었다는 것이다. 지금 다시 와줄 수 없겠냐는 말에 다시 차를 돌려 의뢰인의 집에 도착했다.

뭘 하다 벨소리를 못 들었을까? 견고했던 의뢰인의 철문이 열리고 머리가 촉촉이 젖은 말끔한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 의뢰인은 그 시간에 씻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하필 약속한 그 시간에.


지난 수요일 이사 들어오는 집에 수리할 곳이 여러 건이 된다며 의뢰가 들어왔다. 수리항목에 빠지지 않는 곳이 욕실이다. 욕실은 자주 사용하고 습한 곳이라 곰팡이와 오염이 많이 되는 곳이다. 욕조 주변의 곰팡이 난 실리콘을 벗겨내고 새로운 실리콘으로 말끔하게 작업을 했다. 욕실장이 낡고 거울문이 깨져 교체를 하기 위해 떼어내었다. 그런데 하필 뒷면에 타일이 너무 부족하게 붙어 있었다. 몇 년 전의 욕실장은 대부분 높이가 900mm 정도였다면 요즘은 800mm로 낮아졌다. 900mm로 맞춤을 한다면 단가가 매우 높아진다. 다른 단지들의 욕실장이 800mm의 높이만 되어도 충분했기에 아무 의심 없이 견적을 내었는데 20mm가 부족했다. 욕실장을 달고나면 타일이 없는 욕실벽이 욕실수납장 위로 20mm가 노출되는 것이다.

욕실장을 달고나서 몰딩으로 위에 노출된 곳을 마감하기로 했다. 세대에 방문해서 욕실에 들어가니 물청소를 말끔하게 해 놓은 듯 곳곳에 물이 흥건했다. 양말을 벗고 3단 사다리를 놓고 욕실장 위의 시멘트벽이 노출된 곳을 몰딩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다. 일을 마치고 사다리에서 내려오다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전혀 의심 없이 사다리 발판을 밟고 내려오는 순간 미끄러진 것이다. 엉덩방아를 크게 찌으며 떨어졌다. 아차 싶었다. 왼쪽 등과 갈비뼈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후 왼쪽 골반뼈에도 심하게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요즘 의료대란으로 다치면 안 된다는데 큰일이다 싶었다. 물기로 축축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에서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보니 잘 움직여졌다. 골반도 통증에 비해 잘 움직여졌다. 몸을 천천히 움직여 갈비뼈의 통증을 느껴보니 골절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바닥에 핸드폰이 나뒹굴어져 있었다. 뒷주머니에 꽂아두었던 핸드폰이 떨어지는 엉덩이를 사다리 발판으로부터 보호해 준 것이다. 사다리 발판이 충격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대신 핸드폰 귀퉁이가 깨졌다. 불행 중 다행이라더니 불행 중 행운이었다.

물기가 가득한 바닥을 맨발로 밟았고 물 묻은 발로 알루미늄 사다리에 올랐다가 내려오며 다음 발판을 밟는 순간 마찰력이 제로가 된 것이다. 발판을 정확히 밟았지만 이 절묘한 조합을 이겨낼 수 있는 마찰력은 생기질 못한 것이다. 좀 더 조심해서 천천히 내려왔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온몸이 뻐근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다친 곳은 없었다.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비슷한 징후가 연속해서 발생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요즘 잦은 사다리 작업으로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 마음먹었지만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다행인 것은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튼 요행을 바라지 말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마음으로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