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2>
올여름은 왜 이리 무더웠는지 수리를 하다 보면 조금만 움직여도 땀에 흥건하게 젖는다. 어느 의뢰인분은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에어컨을 틀어놓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신다.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미안할 정도로 시원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작업을 하는 동안 시원한 음료를 제공해 주시고 선풍기까지 갖다 틀어주신다. 이거는 뭐 일을 하려 갔다기보다 시원하게 피서를 보내려 온 기분이 들 정도이다. 당연히 작업은 더욱 정성스럽게 하게 되고 꼼꼼하게 마무리까지 하게 된다. 시원하게 일하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게 되는데 의뢰인은 뭐 당연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신속하게 수리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신다.
주말에 집수리가 가능한지 물어오는 상담들이 종종 있는데 대부분 직장인들이다. 평일엔 직장에 출근하여 시간내기가 어려우니 휴일에 하고 싶다는 의도이다. 쉬는 날 집수리까지 한다면 일석이조가 따로 없을 것이다.
의뢰인의 집은 인테리어를 한지 얼마 안 되었는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새집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변기에서 물소리만 요란하지 물통에 물이 차지 않는다고 했다. 이럴 경우 더 이상 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수돗물을 공급하는 앵글밸브를 잠가놓으면 된다. 의뢰인은 젊은 남성으로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었고 조치도 잘해 놓은 상태였다.
변기가 설치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물어보니 의뢰인은 집을 매입한 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른다고 한다. 연식이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변기에 부품이 벌써 말썽인 것을 보니 부품 자체에 문제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해 간 변기 부품을 갈기 위해 변기 물통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 탓인지 금세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의뢰인은 변기수리가 궁금했는지 일하는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좁고 습한 욕실에서 더운 날씨에 일하다 보면 사우나가 따로 없다. 얼굴에 땀이 흐르고 머리카락은 비 맞은 풀잎처럼 숨이 죽어 갔다.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 의뢰인에게 집도 장만하고 이젠 결혼만 하면 될 거 같다고 말을 거니 묘한 침묵을 깨졌다. 의뢰인은 여자친구도 직장에 다니고 있고 내년쯤에나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도 여자친구도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오늘 일요일인데 데이트 계획은 없냐는 말에 오후에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집안이 깔끔한 것 같은데 결혼하면 와이프가 청소도 하고 밥도 짓고 빨래도 해줘서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의뢰인은 당연한 거 아니냐고 대답한다. 맞벌이하면 집안일도 같이 할 거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뢰인의 반응은 약간은 놀라운 꼰대스러운 대답이었다.
결혼을 했는데 와이프가 밥도 안 해주고 청소도 안 하고 설거지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와이프가 당연히 해야 할 가사를 안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서였을까! 의뢰인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원만한 결혼생활은 와이프가 안 해도 내가 할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필요하다고 했다. 상대방의 좋은 모습보다는 보지 못한 의외의 모습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때 결혼준비가 된 것 같다고 하니 또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내가 쓰던 숟가락이 하나였는데 결혼을 하면 와이프가 숟가락을 하나 가져오게 된다. 숟가락이 하나 늘어 두 개의 숟가락이 되니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내가 쓰던 숟가락을 와이프와 같이 쓰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내가 쓰던 숟가락이 반이 된다고 생각할까? 같이 써서 좋다고 생각할까?
결혼생활은 1+1=2가 되기도 하고 1+1=0.5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3이, 때로는 -3이 되기도 하는 묘한 환경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수리를 마치고 나와 차에 있는 생수를 마셨다.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이거라도 있으니 어디야 하는 만족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