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 Responsibility

넷플릭스의 자율과 책임, 그리고 우리의 조직문화

by 천시로

많은 리더들이 넷플릭스의 “자율과 책임”을 주문처럼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규정 대신 맥락을, 통제 대신 자율을, 이라는 Freedom & Responsibility라는 단 두 단어로 압축된 이 원칙은 한때 우리나라 수많은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고, 너도나도 넷플릭스의 조직문화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돌이켜보자,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는 바뀌었던가?


조직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는 대개 제도에서 시작된다. 호칭을 바꾸고, 지정 좌석을 없애고, 복장 규정을 자율화한다. 변화의 의지를 담은 선언이고,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새롭게 취임하면서 자율복장을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구성원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임원이 최고경영자가 참석한 회의에 반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최고경영자는 "바로 내가 원한 게 이거다"라고 했고, 그 임원은 다음 임원인사에서 승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루머인지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이야기가 회자된다는 사실 자체가 핵심이다. 자율복장이라는 제도보다, 반바지를 입고 온 임원이 승진했다는 사실 하나가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국 조직문화의 실체는 제도가 아니라 사례다. 신수정 대표님은 저서 <최소한의 경영학>에서 “어떤 사람이 승진하고, 어떤 행동이 보상받으며,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이 핵심 그룹에 들어가는가”를 보면 그 기업의 문화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구성원들이 매일 읽어내는 조직문화의 진짜 언어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Freedom & Responsibility라는 원칙이 채용과 보상과 승진 결정 하나하나에 일관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동료와 일하는 것이 최고의 복리후생이라는 말이 구호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성과가 낮은 구성원을 내보내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졌다. 문화가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수천 번의 결정이 쌓여 문화가 된 것이다.


반면 많은 기업들은 넷플릭스의 결과물만 가져다 붙였다. 원칙은 붙여 넣었지만, 그 원칙을 뒷받침하는 의사결정은 바꾸지 않았다. 자율은 선언했지만 실패에는 여전히 엄격했고, 수평을 외쳤지만 보고 라인은 그대로였다. 구성원들은 금세 눈치챈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믿는다.


대전역에 가면 언제나 길게 선 줄을 볼 수 있다. 성심당이다. 이 회사의 경영이념은 놀랍게도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라고 외치는 기업이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기업들을 넘어서는 성과를 내고 있다.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심당이 인상적인 것은 그 사랑이 슬로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사회와 나누는 방식, 구성원을 대하는 방식, 개개인의 평가 지표에 있는 사랑 실천 점수, 오랜 세월 쌓아온 신뢰. 그것이 줄을 서게 만드는 진짜 이유다.


조직문화는 선언이 아니라 축적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는 바뀌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제도를 탓하기 전에 먼저 살펴볼 것이 있다. 우리 조직에서 실제로 인정받고 보상받으며 승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가치가 무엇인가. 리더가 회의에서 어떻게 말하고, 실패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며, 불편한 의견을 어떻게 듣는가.


조직문화는 HR이 만드는 것도, 슬로건이 만드는 것도 아니다. 리더가 매일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다른 회사의 조직문화를 부러워하기 전에, 우리 조직의 리더들이 오늘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더 솔직한 출발점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내린 의사결정 중 우리 회사의 슬로건과 일치하는 것은 몇 개나 될까? 조직문화는 바로 그 답변의 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