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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³ 내 눈물을 안을 때

눈물로 피어나는 우리의 봄

by 새틔

2024년 4월 16일, 작은 둥지로 삶을 옮기는 날이었다. 짐을 싸는 과정에서 침대, 소파, 거실가구 네 개, 선반수납장 두 개, 그리고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해 온 책 백여 권을 모두 버려야 했다. 34평에서 21평으로 줄어드는 공간, 물건들을 버리고도 여전히 좁게 느껴지는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크기로 줄어든 것은 집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함께 쌓아온 기억들과 앞으로의 계획까지, 모든 것이 작아진 것만 같았다.


포장 이사가 한창이던 오전, 집주인아주머니가 찾아오셨다. 내가 나간 뒤 들어올 새 세입자를 위한 도배와 장판 보수, 그리고 전세금 잔금 처리를 위해 오셨다고 했다. 여섯 해 동안 정들었던 집, 그 세월 동안 마치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아주머니는 내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하지만 머무를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을 이해해 주셨다.

은행 원금 상환을 마치고 잔금을 정리한 후,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나의 상황이 안타까운 듯 내 손을 놓지 않고 꼭 잡아주셨다. 눈동자를 마주한 그 찰나, 표현할 수 없는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참았던 모든 감정의 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었다. 목이 꽉 막히고 뜨거운 감정의 파도에 몸이 떨리며 계속해서 쉰 목소리만 나왔다.


아주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따스한 눈빛이 더 큰 울음을 터뜨리게 했다. 그대로 아주머니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아이 앞에서는 늘 든든하고 강인한 아빠로, 부모님 앞에서는 걱정 없는 든든한 아들로 가면을 써왔는데, 부모님과 같은 연배의 어른 앞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부모님께도 보여드리지 못했던 내 진짜 마음, 마치 어린아이가 "나 슬퍼요, 나 좀 봐주세요"라고 말하듯 서툴게 표현된 그 감정은 그동안 얼마나 정서적 안정과 위로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드러냈다. 춥고 외로운 마음, 슬픔으로 가득 찬 내면을 그제야 비로소 직시하게 되었다.


("난 아직 멀었구나...")

"잘 될 거예요. 기도하며 응원할게요."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따스한 봄바람처럼 내 귓가를 감쌌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처럼 메마른 마음에 스며들었다. 아이는 하교 후 새 집으로 돌아와 보니 신난다는 듯 방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좁아진 공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설렘만이 가득한 아이의 눈빛은 내 가슴 한편을 따스하게 데웠다. 복잡한 어른의 마음을 모르는 아이의 순수한 기쁨이 천만다행이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텅 빈 새 집에 울려 퍼질 때마다, 적어도 그 웃음만은 지켜내야 한다는 다짐이 더욱 단단해졌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운 후 거실에 홀로 앉았다. 모든 짐을 정리하진 못했지만, 생활은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했기에 그제야 안심하고 잠깐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낯선 천장과 벽, 좁아진 공간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참았던 감정이 다시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 방문이 살짝 열리며 아이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아빠, 왜 안 자?"

"그냥... 아빠는 정리가 조금 덜 됐어. 너는 왜 일어났어?"

"우는 소리가 들렸어..."


아이의 말에 내 뺨을 만져보니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 속에서, 아이는 천천히 다가와 내 어깨에 작은 팔을 둘렀다. 내 눈물을 닦아주려는 그 작은 손길에, 참고 또 참고 싶었던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우리 집이 작아져서 슬퍼?"

"아니, 그건 아니야..."


아이의 순수한 질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말없이 내 무릎에 올라와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내 심장 소리를 듣는 듯한 그 작은 얼굴에 눈물이 떨어졌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나의 눈물을 흡수했다.


"괜찮아, 아빠. 울지 마."


여덟 살 아이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깊은 위로의 말에 가슴이 저렸다. 항상 내가 감싸안던 아이가, 이제는 내 슬픔을 품어주고 있었다. 서로의 역할이 뒤바뀐 듯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이의 작은 체온이 내 차가운 마음에 스며들며,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약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서 마음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미안해, 아빠가 더 씩씩해야 하는데..."

"나도 울 때 아빠가 안아주잖아."


아이의 말에 한참을 흐느끼고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줄어든 집의 크기만큼 우리의 마음은 더 가까이 붙어있었다. 모든 것이 줄어들고 작아진 세상에서도, 우리의 사랑만큼은 더 크고 단단해지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팔이 내 슬픔을 모두 안을 수 있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는 사실에 따뜻함을 느꼈다.


네가 내 눈물을 안아준 그 순간이 우리의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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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