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인간에 대한 과대평가

by 이구오

영화 <28년 후> 리뷰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먼저, 원작 <28일 후>를 아직 보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 <28일 후>가 초창기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 영화 중 하나라는 점, 달리는 좀비 영화의 시초라는 점 정도만 안다. 워낙 유명한 영화의 속편이 나온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28주 후>가 있었으나, 대니 보일 감독의 작품은 아니기에 잠시 논외로 하겠다. 최근 극장 개봉작에 연달아 실망하면서, 정말 잘 만든, 혹은 무서운 호러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었다. 다만, 국내 개봉 직후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탓에 흥이 식었다. 관람객 평점에 비해 전문가 평점은 준수하다는 점에 약간 기대를 걸며 <28년 후>를 감상했다.



영화 <28년 후>는 일단 좀비물로서의 재미는 거의 없다. 좀비가 유의미하게 등장하는 씬이 몇 없다. 주인공 ‘스파이크’는 아버지를 따라 좀비가 들끓는 Mainland로 출정하는 통과 의례를 겪게 된다. 활도 제대로 못 쏘는 아이를 데리고 본토에 간다는 설정도 이해가 잘 안 간다. 그런데 대부분의 좀비들이 플롯의 흐름을 위해 도구적으로 나타났다 퇴장하는 식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 버프를 누리는 것인지 스파이크는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 복귀한다. 묘사되는 좀비는 그리 만만한 존재도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는 통념적인 좀비가 아니라 신인류에 가깝다. 이 좀비들은 섹스도 하고, 출산도 하고, 부성애도 느낀다. 능력치나 생존력 면에서 어쩌면 지능 면에서도 인간보다 좀비가 훨씬 나은 것 같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28년 후>의 좀비는 이상향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12살 스파이크는 살아 남는다.





오락보다 예술에 초점을 맞추는 시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28년 후>는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다. 스파이크는 아픈 어머니를 끌고 Mainland에서 살고 있다는 의사를 찾아간다. 지 목숨줄 하나 간수를 못 하는 아이가 좀비밭에 엄마까지 대동했는데도 용케 살아남는다. 그런데 겨우 만난 의사는 엄마가 암이라며, 고칠 수 없다며, 대뜸 그날 밤 죽여버린다. 무척 진지하게 내뱉는 “Memento Mori,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해라”는 덤. 그런데도 왠지 스파이크는 대담하게 받아들인다. 존엄한 죽음이 때론 삶보다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나라면 그냥 엄마랑 집에서 쭉 살고 싶었을 거 같다. 좀비 세계관에서 시한부 인생이 대수인가.



여러모로 시리즈의 의의를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던 원작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아이폰으로 촬영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개봉 전부터 아이폰 촬영 장비를 새로 제작했다며 프로모션을 해서 기대감과 궁금증이 있었다. 좀비를 죽일 때마다 이 아이폰을 활용한 연출이 등장하는 건 마치 게임 같고 신선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오히려 약간 조잡한 느낌이 들어서 초반에는 이게 이 영화만의 매력인가? 싶었으나 그냥 결과물 자체가 조악했다. 특히 문제의 마지막 씬은 영국 버전 파워레인저 같아서 헛웃음 나왔다. 차라리 이렇게 B급으로 갔으면 특별함은 남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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