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문
나는 대양을 유영한다. 그곳은 차갑지만 내 온몸을 감싸 안는다. 따스하게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돌리면 각종 물고기 떼가 내 주위를 휩싼다. 스노클 위로 공기 방울이 우산처럼 퍼져 올라가면 몇몇 녀석은 그에 놀라 도망친다. 눈을 휘어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 집 개 같아서 우물 다문 입술이 비식거린다. 비기. 입이 꼭 블랙홀같이 크고 넓어서 붙여준 이름이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다리를 바삐 움직여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쿵, 하고 돌쩌귀에 머리를 박는 순간 나는 대양에서 건져 올려진다. 버둥대는 다리와 뻐끔대는 입은 마치 활어를 보는 듯하다. 볼 만한 광경일 것이다.
“선생님! 쟤 또 머리 박았어요.”
웅성대는 소란 속에 나는 수영장 물을 박차고 가장자리에 걸터앉는다. 물이 찬 수경이 꼭 돋보기 같아서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푹 퍼진다. 지우고 싶다. 축축한 지문으로 그 위를 쓰다듬으면 뽀득뽀득 소리가 난다. 누구는 이 소리가 싫다고 하던데, 난 아니다. 빠악, 뿌득. 오리 울음소리 같다. 어라? 진짜로 들리는 건가. 나는 귀를 기울인다.
“선도경!”
오리가 아니구나.
“저 애는 지난번에도 저러지 않았어요?”
“어휴. 애 엄마는 어디 있대 그래.”
“도도새 또 머리 박았대요.”
내 별명은 도도새다. 비척거리는 모습이 꼭 멸종한 새 같다고 같은 반 녀석들이 붙인 거다. 큰 입이 닮았나 싶어 화장실 거울 앞에서 여러 번 비춰 보기도 했지만 도통 모르는 일이다. 배운 지 얼마 안 된 단어여서 채택이 된 그 별칭은(누군가는 모욕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겠지) 그전에는 꽃게였다. 물을 좋아해 수달 같다고 하던 어른들의 말이 꼭 맞다.
놀랍게도 내게 그 이름들은 기분 좋은 울림을 준다. 애초에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릴 때 해변에서 봤던 게가 잊히지 않고 기억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의 여름은 눈부시게 뜨거웠다.
“도경아, 멀리 가지 말고 엄마 보이는 데에 있어. 알겠지.”
“네에.”
엄마 시력 좋으니까 어두운 데까지 가도 되죠?라는 물음을 애써 삼킨다. 그도 그럴 게 엄마는 어릴 적 몽골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반은 독수리인 셈이다. 슈우웅. 끼이이. 나는 새 흉내를 내며 수경을 덮어쓴다. 조금만 더 가면 차가운 물이다.
나는 발가락을 넣었다가 도로 뺀다. 차가워! 모래와 함께 바닷물을 퍼서 발목 위에 붓는다. 심장에서 멀리, 발부터 올라가는 거다. 촥촥 뿌리고 있자니 목욕탕에서 수도꼭지 아래에 아저씨가 댄 몇 올 없는 머리가 생각난다. 순간 터진 웃음을 흘린다.
꼼지락대는 발가락 사이로 죽은 불가사리 같은 것들이 지나간다. 조금 있으면 살아있는 녀석을 볼 수 있다. 그 생각에 두근거려 밤잠도 못 잔 터다. 두근두근. 발가락 끝에 심장이 달린 것처럼 뛴다. 온 신경이 그로 쏠린다.
이건 몇 박이지. 음표만 지독할 정도로 그리게 만들었던 음악 선생님은 준비됐다며 내 앞에 메트로놈을 가져온다. 똑딱. 이건 1/4 박자. 저건….
“왕!”
강아지다! 금빛 갈기를 휘날리며 짙은 모래사장 위를 뛰는 녀석이 꼭 히어로 같아 보인다. 무릎까지 물에 잠긴 채 나는 그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도경아!”
엄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손을 반갑게 흔든다.
“다친 데는 없어?”
“엄마엄마, 엄마, 나 고래….”
엄마의 손이 내 머리부터 발끝을 꼼꼼히 훑으며 살핀다.
“안 다쳤어요.”
“다행이야.”
“응.”
모든 소리가 귓바퀴 너머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나는 엄마의 목소리에만 이끌린다. 자력이다. 과학 시간에 배운 거다. 수업은 지루해도 가끔 있는 실습 시간이 즐겁다.
정신을 차리면 엄마 손을 꼭 쥔 채 탈의실 안이다. 의자에 앉은 내 머리에서 수모를 벗기는 엄마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엄마 화났어?”
“아니.”
“그러면 아까 얘기 계속해도 돼?”
“무슨 얘기?”
나는 내 친구들을 떠올린다.
“엄마, 바닷속에 친구들이 있어.”
귀에 들어간 물을 툭툭 턴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다 나를 좋아해.”
그래서 나는 물이 좋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