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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트 Feb 14. 2024

한낮

창작 단문


어릴 때부터 죽은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처음 알게 된 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였다. 우리는 으레 그 또래의 아이들이 하듯 개미집을 쑤셨다. 수돗가에서 물을 퍼온 뒤 붓고 나뭇가지로 후볐다. 모래알은 마치 해변가의 파도가 밀려온 듯 물을 머금고 옆으로 흩어졌다. 갑자기 등장한 걸리버의 장난에 개미 사회가 우왕좌왕하는 걸 보며 우리는 웃었다. 까르르.


“에이, 재미없다. 딴 데로 가자.”

“방방 타러 갈래?”

“좋아!”


무릎이 깨진 채로 아이들은 달렸다. 나는 젖은 손을 바지에 닦았다. 뒤따라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개미집은 엉망이었다. 원래 어떤 모양새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배를 까뒤집은 개미가 즐비했다.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니 반질거리는 배가 햇빛 아래서 빛났다. 과학 시간에 선생님이 보여 준 원석보다 더 빛나 보였다.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들어 툭 건드리자 다리가 움찔거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질식일까?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은 걸까. 넌 왜 이렇게 된 거니. 천진한 아이의 덜 여문 뇌는 그걸 재미로 받아들였다. 손바닥 뒤집기. 공고한 개미 사회가 무참히 짓밟히는 건 순간이었다. 너무 쉬워서 흥미가 식을 정도였다. 나는 개미를 슬슬 밀어 다 함께 모았다. 운 나쁘게 시선에 들어오지 않은 몇 마리를 제외하고 수북하게 개미 더미가 만들어졌다. 마른 모래를 그 위로 흩뿌렸다. 여기가 짧은 생의 무덤이었다.


”야! 왜 안 와?“


깔깔거리는 웃음 사이로 친구가 나를 불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잠깐만!“


나는 나뭇가지를 무덤 위에 꽂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뛴 나는 다시 아이들 무리에 섞였다. 튀튀한 고무 냄새가 나는 점프대 위에서 몇 시간을 뛰놀았다. 그러고도 체력이 남아 운동장 세 바퀴를 돌았다. 마무리는 색깔 사탕. 베에. 파랗게 변한 혀를 내밀며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 날 문득 생각이 났다. 개미 무덤. 이파리라도 꽂을까 싶었다. 이게 뭐라고 했지. 아, 추…추무? 어른들이 할아버지 무덤에서 얘기했는데. 기억이 가물했다. 나는 찾을 수 있는 제일 푸르른 잎을 들고 놀이터 한 구석으로 갔다.

다 무너진 무덤이 나를 반겼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나는 코를 킁킁댔다. 나오라는 건 안 나오고 울음이 나왔다. 망가진 모래 더미를 보던 내 뺨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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