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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Jul 05. 2022

엄마의 엄마

엄마와 외할머니를 보면 웃음이 난다.

 내가 태어난 병원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성당 바로 옆의 오래된 건물로, 화장을 하듯 해마다 페인트칠을 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지나갈 때에도 그랬다. 그 의도와는 다르게, 벽 자체와 오래된 창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간의 흔적은 지울 수 없었다. 벽이 하얗고 깨끗해질수록 그 괴리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여기가 그 병원이었죠 하고 물어보니, 운전하시던 엄마는 말하셨다.

 “성당에서 무슨 공간으로 이용한다고는 하던데, 자세히는 모르겠구나.”


 달동네를 지나다가 병원을 기점으로 해서 차는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붉은 벽돌과 파란 슬레이트, 녹슬어서 군데군데 벗겨진 초록색의 철문들이 옆을 지난다. 가로수 몇 그루만 더 지나면 높은 담장을 지나 신축 아파트가 들어선다. 어느 회사에서 그곳의 집들을 모조리 사들인 다음, 깔끔하게 밀어버리고 세운 아파트. 외할머니께서는 이곳에서 살고 싶으시다며 말씀하셨다. 근처 경로당에서 다른 할머니들이 아파트에 사니까 좋다고 어찌나 말을 하던지, 나도 한 번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구나. 엄마와 이모들은 전세로 작은 평수 하나를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계시던 집은 그 아파트에서 4차로를 한번 건넌 뒤 골목에 들어서면 갈 수 있었다. 회색 시멘트와 작은 밭을 지나 골목 거의 끝자락에 있던 고동색 철문. 다섯 걸음 안팎의 마당은 온갖 화분들과 신발장, 외할아버지의 노트와 먼지 쌓인 책들이 가득했다. 시멘트가 발라진 바닥은 어느 날부터 갈라졌고 죽은 화분들이 늘어갔다. 수도가 있어서 김치를 담그시기도 했는데, 그 때면 새빨간 고무 통에 절인 배추와 양념 때문에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한 이모부께서는 술을, 우리는 고기를, 다른 이모부께서는 숯과 불판을 가져오셨다. 쭈그리고 앉아서 고기를 구우시는 동안 나와 동생들은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장난을 치며 놀았다. 벌써 15년 전 일이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날, 엄마와 이모들은 집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내다 버리시기로 결정하셨다. 이전에 다 버린 줄 알았던 책과 노트가 창고에서 또 나왔고, 오래된 식기들이 한 보따리였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엄마와 이모들까지 해서 모두 일곱. 이해가 되는 수준의 살림살이였지만 엄마는 어떻든 버리려 하셨고 외할머니는 나중에 쓰일 데가 있을 거라 하셨다. 대화를 번갈아 보며 나는, 나이가 들어서는 버리는 것이 힘들다는 말을 떠올렸다.

 나는 사촌 동생들과 죽은 화분이라던가 잡다한 쓰레기들을 모아서 내다 버리는 일을 했다. 나만큼 오래된 달력부터 쓰지 않을 일회용품들과 앙상한 가지만 남은 화분들. 어려서 보았던 거대한 액자와 포스터를 기억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파란 배경에 그보다 어두운 돌고래였는데. 옷장이나 서랍 안에는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기에 심심할 새가 없었다.

 물건이 치워지면 엄마와 이모들은 물걸레로 한번 닦고 마른걸레로 한 번을 더 닦으셨다. 그래도 가 지워지지 않았다. 반나절 정도를 그렇게 하고서도 화분은 여전히 많았는데, 엄마는 더 버리기를 기어이 포기하셨다. 살아있는 화분 몇 개는 누군가 가져가길 바라며 다소곳이 놔두었다.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는 사이, 집 근처에 쓰레기가 모이는 자리에는 온통 외할머니의 물건들로 가득했다.

 며칠 뒤부터 엄마와 이모들은 아파트 청소를 하셨고, 텔레비전과 냉장고 같은 가전을 보러 다니셨다.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으면 엄마는, 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 아니냐 하셨다. 웃으면서도 질리고 불만인 듯하면서 편안한 표정. 외할머니도 엄마에겐 엄마였지, 참.


 아파트 단지는 정말 깨끗했다. 그래서 지나온 언덕의 집들이나 길 건너편의 3층 남짓의 상가들과 굉장한 대조를 이루었다. 섬처럼, 우리는 우뚝 솟은 아파트의 6층으로 올라갔다.

 베란다에는 지난번에 없던 화분이 두 개나 들어와 있었다. 죽이실 거면 이런 거 사지 마세요, 엄마는 아직 싱싱한 잎사귀를 훑으며 말씀하셨다. 제라늄과 게발선인장, 천리향과 철쭉부터 몇 년 전부터 살아있는 카네이션까지. 특히나 만냥금은 10년이 넘도록 살아있는데, 허리춤까지 오는 키에 비해 앙상한 가지와 그 끝에만 몰려 있는 잎사귀가 기이했다. 확실히 많아 보이긴 했다.

 “꽃이라도 있어야 뭐든 좀 할 거 아니니, 안 죽이니까 가만 놔둬라.”

 “나중에 얘들 시들해지면 하면 말하세요. 집에다가 심어서 살리게.”

 엄마는 낱개로 포장된 닭다리와 떠먹는 요구르트를 장바구니에서 꺼내서 외할머니께 보이셨다. 고개를 끄덕이시며 괜찮다는 외할머니와 하나씩 들어 보이는 엄마. 오이, 방울토마토, 작은 족발. 마지막으로 양파를 보신 외할머니는 손을 저으셨다.

 “너무 고기만 드시니까 어떻게든 해서 드세요.”

 양파를 끝으로 냉장고 정리를 마치신 엄마는 다음 주에 또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 조수석에서 갑자기 웃음이 났다. 엄마는 외할머니한테 맨날 “이거이거 저거저거” 하시고, 외할머니는 맨날 엄마가 “이런이런 저런저런 잔소리”라는 모습이 웃겼다. 오는 길에 내리막이던 언덕은 오르막이 되었다.

 “나중에 저 성당 한번 같이 가봐요. 엄마가 나 낳은 병원이 있던 자리잖아요.”

 새하얗게 칠해진 성당을 지나며 말했다. 별 거 없겠지만 그러자, 차는 언덕을 내려와서 큰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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