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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Jul 06. 2022

슈가

오늘도 그를 만나러 갔다.

 내가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에 그는 내가 있는 원룸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룸메이트와 전세 대출이 엮인 그의 방이 따로 있다며. 조금 더 시간을 갖자고 그는 말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은 일순간 식어버린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경험적으로, 동시에 직감적으로. 그는 나와 거리를 두며 관계를 이어갔다.

 ‘뜨거우면서도 오래 이어질 수 있어, 나는 그런 사람이야.’

 말하지 못했다. 괜히 부스럼 만들기는 싫었다. 과분한 사람과 만나면 작은 실수라도 경계하게 된다. 나를 바꾸자, 이 정도 거리에 익숙해지자. 그 선택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늘은 저녁 먹으러 올 거야?

 오후 3시가 넘어가지만 그는 답장이 없다. 읽지도 않은 카톡을 바라보니 일이 바쁜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나도 일이 바빠야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쓸 것이다, 그게 좋다, 그런 내가 괜찮냐 물었다. 그는 대답을 미뤘다. 내가 책을 출간하고 성공한 작가가 되면 모든 답을 얻을 줄 알았다. 그래서 내 ‘모든 것’을 쏟아 붓기로 결정했다.

 집을 구한 것은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식이 글을 쓰겠다며 나돌아 다니고 방황하는 모습을 근 10년간 보시던 부모님은 한번 사는 인생이라며, 1년간 살 방을 계약해 주셨다. 매 월 일정한 생활비도 보내주셨다. 나는 걱정 없이 매일 글을 쓰러 도서관에 갔다. 가끔 점심을 먹으러 가면 어머님은 내 표정이 바뀌었다며 편해 보인다고 하셨다. 글을 쓰기 시작해서, 아니면 연애를 시작해서?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하나를 숨겨야 한다는 점이었고 내 선택은 당연했다.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9년간 일기만 써오다가 이제야 깨달았다고, 부모님에게 감사한다고. 나는 악착같이 읽고 쓰고 성공해야 했다. 어떤 답이든 성공을 해야만 얻을 수 있고, 두 가지 이유를 모두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가 퇴근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에게 카톡을 남겼다. 답장이 없어도 괜찮아, 너는 바쁜 사람이니까 언제든 편하게 말해줘, 수고했다는 말을 할 때면 언제나 그랬다. 그가 생활비를 주거나 밥을 더 사지는 않았다. 동갑인 우리는 철저하게 나눠서 돈을 냈다. 그에게 돈을 달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내겠다고 했다. 빚을 지기 싫어서? 그렇다. 아껴서 살면 데이트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스스로의 위치를 증명하는 것이라서?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돈의 출처는 말하지 않았다. 그가 묻지 않아서 나는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은 약 먹고 먼저 자러 가볼게, 운동 조심히 다녀오고 푹 쉬어!

 나는 수면제 한 알을 손에 올려놓은 채로 카톡을 보냈다. 사진을 찍어 보내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겨서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는 내 말을 믿어 줄 거야, 나는 일을 하러 가는 거야. 성공의 형태는 무한하다. 필요하고 낚아챌 수 있는 몇몇 성공 중에서 나는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관계를 지키고 답을 얻기 위해서.


 변기는 게걸스럽게 수면제를 삼켰다. 베이지색 바지와 무늬가 들어간 검은 셔츠를 꺼내 입었다. 렌즈를 끼고 머리를 매만졌다. 늦은 저녁에나 만나기로 했으니 지금 나가도 충분해 보였다. 여름 한가운데라 오후 6시가 넘어도 쨍쨍했다. 어느 빛이든 피하기 위해서 급히 택시를 탔다.

 -오늘은 몇 시에 갈까요?

 이 사람도 항상 답장이 늦었다. 20대 후반에 안정된 직장을 지닌 그와 동갑인 나, 그리고 중년의 돈 많고 시간도 많은 이 남자.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사람을 ‘슈가 대디’라 말했다. 몸을 파는 것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 하거나 명품을 사주라 한 적도 없는 나는, 그런 스테레오 타입이 싫었다. 떳떳한 일은 분명 아니다. 부모님이나 그 이에게 설명하라 한다면 나는 입을 다물 것이다. 그러나 중년의 그 사람, 슈가도 나에게 관계를 요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선택은 항상 지속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도 괜찮아요. 천천히 와요.




 슈가는 항상 같은 레스토랑에 약속을 잡았다. 나는 첫 약속을 기억한다. 프랑스어로 된 간판과 널찍한 내부 공간에 그만큼 기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는, 기이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공간. 흔히들 파인 다이닝을 하는 곳이라 슈가는 설명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은 위험하지 않다고. 자신은 젊은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돈을 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듯 말했다. 매트하고 짙은 녹색 외벽과 흰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밝은 회색의 문을 밀고 들어가 다른 방으로 향했다. 상아색에 은은한 조명. 깨끗하고 마른 향기가 테이블 반대편에서 풍겼다. 그는 오늘도 여전할 것이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첫날에 나는 단순하지만 굉장한 예술품처럼 그를 바라봤다. 슈가는 나의 그러한 태도를 알아차렸지만 캐묻지 않았다. 시선이 익숙하기보다는 배려하는 느낌으로, 철학자와 소설부터 정치와 세계정세를 이야기하며 내 생각을 물었다. 그는 박식하고 젠틀하며 준비한 말만 했다. 와인을 이야기하다가 프랑스의 역사로 넘어갔고 예술 자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상파를 이야기하다가 모호한 것과 감정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지금과 같다고 했다. 그는 크게 웃었다.

 “그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오랜만이라서, 같이 저녁을 먹고 싶었어요. 그뿐이랍니다.”

데이팅 앱에 허세처럼 써 놓은 책들 중에 하나를 말하는 것이었다. 오- 또는 음-. 그는 맛을 보듯 내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인간, 약이라도 타서 어떻게 하려는 건가? 애초에 이런 수상한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말아야 했는데! 슈가는 음식을 보다가 술을 마시고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술을 마셨다. 지금껏 만났던 끈적한 시선을 느끼지 못해서 나는 더 불안했다.

 내 몸이 목적이지, 그렇다고 어서 티를 내란 말이야. 이런 일은 익숙하니까 빨리 끝내는 게 편할 텐데.

 “단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라 생각해주면 어떨까요? 소설에서나 있는 이야기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을 함께 먹는 것만으로 돈을 주는 사람은 없다, 잘 알죠. 술에 취하면 돌변해서 욕정을 풀어내고 돈을 쥐어 주는 사람이 훨씬 흔하다는 사실을. 당신이 저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슈가와의 첫 만남은 부끄러움으로 기억한다. 타인의 추악함을 이미 알고 있다는 눈빛과 자신은 다르다는 자신감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취했나 봐요, 어영부영 가게를 나온 나는 방으로 급히 돌아왔다. 이미 9시가 넘어가는 밤이었지만 지원, 그러니까 동갑의 연인을 불렀다.

 -보고 싶어, 지금 바로 와줄 수 있어?

 그는 뛰어왔는지 땀에 젖어 있었다. 속옷만 입고서 침대에 웅크리고 있던 나는 신발을 던지듯 벗고 들어온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였으나 곧 나를 안아주었다. 땀의 짠맛과 끈적한 그의 몸을 훑으며 침대로, 나는 부끄러웠다. 화가 났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말하지도 못하니 그 또한 물어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만 오천 원입니다.”

 -도착했어요, 들어갈게요.

 그는 읽었지만 답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깨끗하고 마른 냄새가 났다. 오늘은 더 진했다. 슈가를 계속 만난 것은 내게 최선이었고 그 선택은 지금도 유효하다. 후회하는 순간 손쉽게 뒤집어질 진심이라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면 물어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내가 잡아챈 성공은 추악한 나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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