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후 Jun 30. 2022

완벽한 치료

충격요법의 효과는 굉장했다

 나는 2주마다 서울로 올라갔다. 정신과 약은 한 번에 4주 이상 타는 것이 힘들다는 것, 그리고 이전에 몸이 버티질 못해서 일주일간 헛구역질을 하며 지냈다는 사실 때문이다. KTX와 지하철을 거쳐 병원 정문을 지나면 길게 이어진 경사로와 곧은 나무들이 이어진다. 병원이라는 곳은 분명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곳인데, 나는 병원에 들어가면서 더 힘들었다. 대학 내에서 상담을 담당해주신 선생님은 “여전히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보통의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순탄치는 않았으나 완전히 망가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병원에서 보통인 ‘환자’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다. 링거대를 끌며 산책하는 중년 여성과 시선을 잃고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어린아이들 마저도 뛰지 않고 숙연히 걸어가는 그 분위기가 너무 무거웠다. 가슴이 시큰거리며 발 밑에 시선을 고정하게 되는 분위기. 정문을 지나 3층에 있는 해당 창구까지 걸어가며, 나는 아픈 사람이 되어갔다.

 순서를 확인하고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 분위기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광이 나는 바닥과 낮은 천장에는 힘없는 조명이 “여기는 밝은 곳이야! 괜찮을 거야!”라며 억지로 웃는 기분이 들었다. 수납과 예약 일정을 잡는 창구에는 기다리는 사람과 급한 사람, 새치기를 하는 사람과 구부정한 자세로 묻고 또 묻는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어지럽다, 싫다, 나는 왜 여기서 지금 이러고 있을까.

 메모를 하다가 순서가 다가오면 진료실 앞에 있는 의자로 이동했다. 간호사는 한 사람이 나오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이 나오면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세 번 불러도 반응이 없으면 클릭 몇 번을 하고 새로운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 앞에는 김O현, 박O수, 이O원, 하나씩 가려진 이름이 차례대로 올라가고 사라졌다. 나는 검은 백팩을 가만히 끌어안고서, 이름을 부르는데 저 표시가 무슨 소용이 있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이상한 조항의 부산물일까, 생각에 잠겼다.


 “이번 주는 어때요, 약은 잘 먹었나요, 별다른 일은 없었고요, 잠자는 것은 어때요, 그럼 다음에 봅시다.”

 진료는 신속했다. 다음 달 언제 몇 시,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오는 데까지 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께 전화를 두 번 하고 내려갈 KTX 시간을 보기에는 충분한 시간. 약은 항상 같은 곳에서 탔다. 일층 전체를 사용하던 그 약국은 문 앞에서부터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벽면에 작은 엘리베이터로 한 장을 올려 보내고 약을 받았는데, 딱 병원만큼 정신없었다. 차이점이라면 병원과 바깥의 중간 지점이라서 환자들 중에는 마치 다 나은 것처럼, 벌써 약효가 있는 것처럼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그러했다.

 오묘한 기분은 약국의 상호명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의 내가 겪었던 ‘종로’와 어딘가 모르게 비슷했다. 약국에서는 약을 받아갔고 종로에서는 술을 받아 간다는 차이만 있을 뿐. 적게 쓰면 약이 되고, 많이 쓰면 독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적당히’를 몰라서 아예 먹지 않거나 너무 많이 마시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병원을 오래 다녔나?) 그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말없이 소주잔을 채워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인데 나 좀 별로지, 말없는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서 아무 말이나 튀어나왔다. 위로나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에게 새빨간 경고 표지판처럼, 너무 빠르다며 막아서는 방지턱처럼.

 매번 만났던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데…’ 하고 말하면, 내 앞에 있던 그들은 때마다 멋쩍은 웃음을 짓다가 괜찮다며 술 한잔하며 주제를 옮겨갔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서 ‘나는 힘들 거 같아’라던가 '너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거 같아' 하는 이별을 통보받았다. 괜찮기는 개뿔.


 그의 시선은 내 목과 가슴, 어깨 주변의 어딘가로 향했다. 기다리는 침묵은 언제나 무거웠기에, 나는 급히 한 잔을 더 비우고는 어제 만났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물어봤다. 그는 적당히 괜찮았고 그저 그랬으며 어느 정도 친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번엔 좀 덜 아프겠지, 생각할 즈음에서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두 손을 모으고는 진지한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기도해줄게, 그리고 내일 같이 교회에 가자. 그러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기도의 효과는 굉장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 않았고, 우울하거나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 사실을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었으니까!) 그가 닭발을 곁들인 소주를 성수 삼아 10초간 기도해준 것의 효과였다. 연애하기 전에 종교가 있는지 물어본다, 소주를 마실 때에 무겁고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꼭 해야 한다면 맥주를 마시면서 한다는 철칙도 생겼다. 그만큼 나의 변화는 놀라웠다. 그러나 그는 내게서 어떠한 소식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하고도 완벽하게.

 아무튼, 기도의 효과는 굉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원확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