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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Jul 23. 2022

민들레와 비눗방울

나는 바람에 날리는 것들이 싫어

    그는 벌레를 내쫓듯 손을 휘저었다. 아이가 민들레 씨앗을 후 불어 날리고 있었다. 흰 솜털은 바람을 타고 산책로로 날아들었고 아이는 비눗방울 같은데 터지지 않는다며 좋아했다. 쭈그리고 앉은 엄마는 핸드폰에 가려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연신 사진을 찍으면서도 웃고 있겠다. 민들레만 아니었다면 평화롭고 괜찮은 오후 5시의 풍경이었다.

 그는 민들레가 싫었다. 노란 꽃과 흰 솜털 씨앗들, 키가 크지 않아 바닥에 촥 붙어있는 모습이나 희망이라는 전형적 비유 때문이 아니었다. 쉼 없이 번지며 시기 내내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이 싫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와 싹을 틔우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리는 민들레의 생명력이 의심이나 걱정과 참 닮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간간이 알고 지내던 바람은 지나가는 목소리로,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어! 씨앗을 흘리고 지나갔다.

 어떤 씨앗이 발아하는 데에는 적절한 물과 온도, 흙과 빛이 필요하다. 그 씨앗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카톡을 보냈다. 5분이 지나고 그는 전화를 걸었다. 5분 뒤에 또 걸었다. 그는 흘러왔던 바람에게 어디냐 물었고 그녀의 소재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바람은 어디 어디 하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라 했다. 그러나 그는 찾아가지 않았다. 민들레를 뿌리 채 뽑아버리며 관계에 어떠한 금도 가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는 와중에도 아이는 비눗방울을 불었다. 바람을 타고 통통 튀겨오는 방울들 중 하나는 카페테라스에 앉아있던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그녀는 벌레를 잡듯 손을 내저어 그것을 터트렸다. 딱 12살, 띠동갑인 사촌오빠는 조용히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모든 친척들과 연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녀는 다시금 날리는 비눗방울을 바라봤다. 그 아이는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5월의 5시는 저녁으로 가는 어스름 어딘가 위치했으므로 저녁을 먹으러 집에 돌아가는 것이겠다.

 “그걸 내게 말하는 이유가 뭐야?”

 그녀는 말했다. 각별하지 않더라도 친했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그녀는 더 먼 곳을 바라봤다. 공원 끄트머리 벤치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들이 지팡이를 짚고서 일어나는 모습, 해가 떨어지며 남색과 보라색으로 바뀌는 구름의 색, 그리고 달칵거리며 소리 내는 얼음과 잔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누군가에게 말은 해야 하지 않겠어, 어떤 이유로 떠나는지. 단지 그뿐이야.”

 사촌오빠는 사랑하는 사람을 쫓아 떠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삼십 대의 끝에서 불타는 사랑으로 온 가족과 친척을 떠난다는 그에게 일종의 경외심마저 들었다. 떠나며 버려지는 것들에는 어떠한 미련도 없다는 비눗방울처럼 투명한 그의 표정은 순수했다. 동시에 그녀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건 짐을 떠넘기는 거야. 오빠만 편하려 하는 거라고.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떠나고 하는 것들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서 관심 없어. 다만 뒤처리를 다 떠넘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그는 잠깐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동안 그녀는 비눗방울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방울들을 손으로 쓱 훑었다. 불쾌한 미끄러움이 손끝에 남아서 치맛자락에 슥슥 닦아버렸다. 자신이 행복만 주다가 아무런 책임 없이 떠나가는 것처럼 구는 비눗방울이 정말 싫었다. 아이가 집에 가기 전에 한 번을 더 불었나 보다. 작은 방울 하나가 또 날아들었고 그녀를 지나 카페 유리창에 닿았다. 톡, 그녀는 그제야 일어났다.




    그는 밤이 되도록 기다렸다. 그녀가 먼저 말해준다면 그는 무엇이라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음속 민들레는 꽃을 세 번 피우고 씨를 또 날렸다. 여전히 읽지 않은 카톡을 보면 바람이 휭 나불었다. 네 번째 씨앗이 꽃 위로 날렸다. 민들레는 조건이 맞으면 4월부터 6월까지 꽃을 피웠다. 지금이 5월 한복판이라 그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9시가 넘어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별일 없다는 듯 받았다.

 “미안, 무음으로 되어 있어서 못 받았네. 무슨 일 있어?”

 그녀의 말은 태풍처럼 불어 닥쳤다. 솜털과 뿌리 채 뽑힌 민들레들이 일순간 하늘로 솟구쳤다. 덩이덩이 흙을 매달은 민들레가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한 줌도 안되어 보이는 그 흙만이 그녀를 향한 마지막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평소처럼 해야지, 무슨 말이든 기다려야지 하던 그의 마음은 태풍을 이기기에 너무 작았다.

 “누구 만났어?”

 “사촌오빠. 우리 가족이 좀 복잡다난한 거 알잖아.”

 “우리가 아니고 너희 가족이겠지.”

 민들레 씨앗들은 그녀 마음에 파고들었고 비눗방울을 사정없이 터트렸다. 왜 그러냐 묻지 않았다. 그녀는 좋은 말을 삼켰다. 어차피 우리는 위태로웠으니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우리 잠깐 만나자. 할 이야기가 있어.”

 “그래. 우리 만나자.”


    그들은 말없이 공원을 걸었다. 플라스틱 컵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찰랑거릴 뿐이었다. 밤에 잠 못 자면서 왜 커피를 마셔, 이거 디카페인이야, 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말할 거야?”

 “그래, 어차피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거니까.”

 그는 풀꽃이 많은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밤이지만 공원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뛰어다니며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우리 잘 안 맞는다는 거 대충 알고 있지? 웬만해서는 맞추려고 노력하고 계속 힘썼어. 노력파라서 내가 참으려 했는데… 서로 좋은 사람을 만날 때가 온 거 같아.”

 그는 말없이 멈췄고 그녀는 앞으로 걸었다.


 노력? 티는 내면서 뭐가 불편하냐 물으면 말도 없는 게 노력이야? 참는 거랑 노력하는 거랑 구분도 못하는 애였어? 대화도 제대로 안 한 주제에 노력파라고 스스로 정의하면 노력이 인정돼? 그럼 나는 노력을 안 한 사람이야?


 그는 말을 삼켰다. 그녀도 멈췄다. 어디선가 비눗방울이 날아들어 그들 사이로 떠다녔다.

 “나 마음이 변하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 거 알지. 이젠 어쩔 수 없나 봐.”

 “그게 네가 할 말이야?”

 그는 보도블록 경계에 자라는 민들레를 걷어찼다. 솜털을 단 씨앗들이 비눗방울과 섞이다가 바람을 타고 왼쪽 화단으로 내려앉았다. 흙에 떨어진 그것들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녀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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