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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Jul 27. 2022

다이빙

우울은 해파리를 닮았다

    나는 서류봉투에 500만 원 수표 두 장에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가 쓰인 메모, 유서 한 장, 마지막으로 편지를 담고는 곱게 봉했다. 편지는 배를 몰아 바다 한가운데로 데려다준다는 친구에게 줄 것이었다. 바다로 떠나는 이유는 다이빙을 하기 위해서. 재작년 여름, 아내가 쉬는 날짜에 맞춘 휴가에서 스노클링을 경험한 뒤부터 다이빙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말이 중독이지 인터넷 검색을 하며 대리만족만 느꼈으니 이끌렸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이를 지켜보던 아내는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원한 것은 태평양 한가운데의 산호초 바다도 아니고 해녀가 소라와 전복을 따는 제주도 바다도 아닌 망망대해.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었다.

 친구는 진도에서 낚시꾼들을 태우고 포인트를 돌아다니거나 숙식을 제공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직접 낚는 것도 좋지만 어부는 되기 싫다고 그는 말했는데, 새벽에 나가 물고기를 잡고 돌아와서는 그물을 다듬거나 하루 종일 가게에서 생선을 썰고 끓여다 파는 자신의 부모를 보고 생각한 것이겠다. 수재와 천재 사이에 있던 친구는 능력이 있음에도 부모의 배를 이용해 느긋한 삶을 살고자 했다. 오랜만에 연락을 받고 먼바다로 데려가 달라는 말에 그는 내 상태를 의심했다.

 “이거 무슨무슨 방조죄 걸리는 거 아니야? 난 위험한 일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나는 촉이 좋은 그에게 돈을 제시했다. 당연히 실패했다. 거짓말도 순식간에 들통났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엔 껄끄러웠다. 어쩔 수 없이 장문의 편지와 그림 한 장을 그려 보냈다. 먹는 약의 종류나 양과 증상은 쓰지 않았다.

 “이유부터 말해. 난 너에게 이유를 들어야 속이 풀리겠어. 친구이기도 하지만 한 배의 선장으로써.”

 가정주부로 살다가 떠난 여름휴가에서 바닷속에 떠다니는 해파리를 보았으며 그것을 찾으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적힌 편지. 그냥 혼자 있고 싶다는 내용 사이에는 연녹색의 바다와 가는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햇빛, 그 사이에 코발트블루와 검은색 선이 그어진 해파리가 동봉되었다. 나의 우울증을 이미 알고 있던 아내가 이 그림을 봤다면 나를 병원에 가뒀을 것이다.

 오케이, 그는 동의하거나 이해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일시를 알려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주소를 받아서 다이버 장비들을 그곳으로 보냈다. 몸만 가면 바로 출발할 수 있는 준비가 단 2주 만에 끝났다. 아내와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고 무정자증이라는 결과를 받은 것은 2주 하고 3일이 지났을 때였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은 5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아내팔을 잡아끌다가 실이 끊어지듯 툭 놓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파트 복도에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나도 나갈 채비를 했다. 미리 준비해둔 서류봉투, 핸드폰과 지갑이면 충분했다. 소리는 오른편 계단으로 향했다. 어두운 계단 먼 곳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미안. 너에게 잘못은 없어. 이건 온전히 내 잘못이야.


 입만 오물거렸다. 위로를 건네며 옆에 앉던 아내의 온기가 공기방울처럼 떠올랐지만 붙잡지 않았다. 급히 집으로 돌아가 여러 가지의 명의를 당신으로 돌려놓았다는 서류만 가지런히 포개어 놓을 뿐이었다.


    KTX를 낚아채듯 탄 다음 목포로 내려갔다. 크룩스와 편안한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목포역에서 진도로 가겠다는 나를 보고 나이 든 택시기사가 20만 원을 불렀다. 옆에서 40대 후반, 끽해야 50대 중반인 다른 택시기사가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더니 18만 원을 불렀다. 하늘이 무너져도 2만 원 싸게 부르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18만 원을 불러준 기사에게 친구가 보내준 주소를 불러주고는 지갑에서 5만 원권 4장을 꺼내 드렸다. 잔돈은 괜찮으니 아무 말없이 가 달라 부탁했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시간 어촌의 바다는 천천히 어두워졌다. 오랜 친구는 나를 반겼으나 해를 등진 탓에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그는 장비는 모두 배에 실어 놨다고 말했다. 나는 손가락 자국이 선명한 서류봉투를 그에게 줬다.

 "저녁 먹고 갈래?"

 친구는 열어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배에 올랐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흔들리자 온 몸이 휘청였다. 곧이어 배에 시동이 걸렸고, 나는 요란한 엔진 소리에 조용히 숨었다. 어두워지는 바다 위로 흰 거품을 남기며 배가 나아갔다. 후미에서 나는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마을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내 선장실 옆의 작은 방에서 잠수복을 낑낑대며 입기 시작했다.

 “그 해파리가 여기에도 있다는 보장이 있어?”

 밤바다 한가운데로 나오자 친구가 말했다. 편지에 끼워 보낸 그림을 말한 것이었다.

 “서울에는 없어.”

 “네온처럼 빛나는 것들은 많았을 거 아니야. 화려하게 빛나는 녀석들. 그런 것들은 별로야?”

 동문서답을 했는데도 그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말없이 오리발을 찾았다. 구석의 구명조끼 위에 비닐포장도 뜯어지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배가 출렁, 그는 파도가 조금 높으니 괜찮냐 물었다. 공복이라 다행이었다. 포장을 뜯는 소리와 고무끼리 맞부딪치며 끌리는 소리 사이에 그가 소리쳤다.

 “맞다, 무게추 안 챙겨 왔네!”


 우리는 다시 마을에 도착했다. 금방 도착한 것으로 보아 그가 주변 바다를 한 바퀴 돌았을 뿐임을 알았다. 선착장에는 눈이 저릴 주황색 가로등만이 켜져 있었다. 나는 잠수복과 오리발을 신은 채로 배에서 내렸고 조금 있다가 그가 뭍으로 올라왔다.

 “너 그 모습 진짜, 큭큭.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 해!”

 그의 핸드폰은 플래시를 터트렸다. 검은 잠수복 차림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산발인 머리와 당장이라도 철퍽 소리를 낼 듯한 시퍼런 오리발. 나에게 보여주고도 그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한참 동안 웃느라 고생했다. 뚱한 표정을 앞에 두고도 정신없이 웃는 그를 보다가 맥이 풀려버렸다. 허기가 바닷바람보다 진하게 밀려왔다. 옷가지와 돌려받은 서류봉투를 뒷좌석에 툭 던지며 그의 차에 탔다. 친구는 오늘 잡은 쏘가리로 지리를 끓여준다며 시동을 걸었다. 아직 말을 안 했나? 그는 요리를 참 잘한다.

 “가면서 소주도 사가자.”

 나는 오리발을 벗으며 말했다.

 "이미 사놨지!"

 우리는 노란 가로등과 어둑한 밤바다가 내리 보이는 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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