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면 근처에는 게이바가 많은 어떤 골목이 있다. 종종 그곳에 가면 나는 건물 한 귀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바에 갔다. 너무 작지도 않았지만 크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사장님이 마음에 든 곳이었다. 40대 초반, 그보다 30대로 보이는 외모에 나긋한 말투와 세상 좋은 웃음을 짓는 모습. 아무튼 그 바는 의자 등받이가 빨간색인지 분홍색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고동색 바 테이블에 새파란 네온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여느 바처럼 바텐더 뒤에는 무수한 술병들이 놓여 있었다.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던 나는 그곳, ‘녹스’에 가면 대부분 롱티를 주문했다.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온갖 술을 다 넣어서 금방 취할 정도로 도수가 강한 칵테일이다. 그곳의 사장님은 다른 바와 다르게 롱티를 진하게 타주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평일이면 그곳도 여느 술집처럼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느긋한 분위기가 좋아서 9시 전후에 들어가면 시간을 모를 정도로 취해야 빠져나왔다. 화요일이나 목요일에는 11시까지 혼자 있거나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 모두 혼자 와서 각자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술을 마셨다. 20대 후반이었던 나에게 30대와 40대이던 형들의 이야기는 재밌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것이 뻔하다고 핀잔을 주겠지만 당시의 나는 충분히 만족했으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분들을 만나더라도 분명 재밌을 것이다.
그날은 4월 말 늦봄의 어느 목요일이었다. 며칠 전에 대학 동아리 회식에서 거하게 취했던 나는 몸을 사릴 생각으로 무알콜 모히또를 홀짝이고 있었다. 가끔 뵙던 분들은 일이 있었는지 10시 넘어서도 나 혼자였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데 어떤 여자가 게이바에 들어왔다. 작은 바이다 보니 바 테이블 왼쪽에 있는 문이 열리면 들어오는 사람을 힐끗 보게 되는데 여자, 이곳에 여자라니! 소설에서나 보는 광경을 직접 마주하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장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한 구석 자리에 앉았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칵테일 하나를 주문하고는 살짝 웃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 오는 손님이야. 사람 없는 시간에 종종 와서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가니까 내쫓을 이유는 없지.”
사장님은 무슨 별일이냐며 웃었다. 하긴 사람 그림자도 보기 힘든 평일에 손님은 귀할 터였다. 내가 말을 걸어볼까 고민하던 차에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혼자 왔어요? 좀 어색하면 미안해요. 가끔 와서 마시고 가기에 여기만 한 곳이 없다 보니. 다른 곳은 여자 혼자 술을 마시기에 불편하거든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대놓고 무시를 해도 괜찮은 곳이었으니까. 나도 그런 사람이었고, 그러하기에 그런 공간을 좋아했으니까. 그녀는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제 발로 걸어 들어왔던 것이다. 사장님은 그녀가 재밌는 사람이며 여러 일들을 겪은 사람이라고, 무엇보다도 착한 사람이라며 눈짓을 했다. 세상 좋은 표정으로 좋은 말을 하는 그 사장님의 모습이야 말로 내가 그곳에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지은이예요. 나이는 대충 말 안 해도 내가 누나일 텐데, 괜찮죠?”
나는 괜찮다 웃으며 통성명을 했다. 여기 자주 와요, 어디서 왔어요, 사투리 보니까 타지에서 온 사람 같은데, 술은 잘 마셔요? 사소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잠깐의 정적이 찾아오자 내가 물었다.
“누님은 어쩌다가 여기에 오기 시작하셨어요?”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웃자 나는 농담이라며 바보처럼 웃어야 했다. ‘누나’로 정정한 뒤에 그녀는 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일본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에 한국으로 들어왔어. 건강검진을 했는데 유방암이라고 수술을 해야 한다나. 그래서 했지, 초기이기도 했고 전이도 안 돼서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보는 중이지만. 아플 때엔 아무래도 타지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가족이랑 있는 게 좋잖아?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고.”
그녀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얇은 외투를 살짝 걷었다. 조금 헐렁한 셔츠였지만 확실히 보통의 여자들처럼 가슴이 봉긋하지 않았다. 아예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만져볼래?”
거침없는 그녀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깔깔 웃는 그녀는 아득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어떤 일이라도 이겨낼 수 있으며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어른, 당시의 나는 어렸다.
“너무 심한 장난은 치지 마라고.”
사장님의 제지에 그녀가 머쓱하게 웃자 괜찮다며 나도 웃었다. 그렇게 12시가 되니 나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당시의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그녀는 나와 함께 마실 생각으로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이야기도 많이 한 데다가 그녀의 호의가 싫지 않던 나는 흔쾌히 잔을 받았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은데? 새파랗게 어린 애기랑 술도 마시고 말이야.”
짠- 하며 그녀는 말했다.
새벽 2시가 되어가는 시간까지 그녀와 나, 사장님은 손님이 없어서 가게가 망하겠다는 시답잖은 것부터 인생과 지나간 인연에 대한 것까지 쉼 없이 이야기했다. 도중에 취기가 너무 빨리 오르는 탓에 물을 연거푸 마셨지만 그즈음 나는 거하게 취기가 올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장님은 가는 것이 좋겠다며 대화를 끊었고, 계산을 하고 근처에 있는 피시방이나 사우나에 가서 대충 누워있을 요량으로 녹스를 빠져나왔다. 담배 필 겸 함께 나온 그녀는 잠깐 기다려 달라며 라이터를 켰다. 투명한 주황색 가로등 아래에서 그녀의 담뱃불은 유독 눈에 띄었다.
“호빠 가지 않을래?”
“네?!”
덤덤히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려 담배연기를 훅 내뱉은 그녀는 호스트바, 또박또박 말했다. 초여름 새벽의 미적지근한 열기가 담배냄새와 함께 쏟아지며 술이 깨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연한 복숭아색 입술에 담배를 물고서 그녀는 조용히 기다렸다. 허연 담뱃재가 천천히 자라나는 동안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 속에서 툭, 그것이 떨어지며 강렬한 불씨가 보이니 나는 답을 했다. 그녀는 웃으며 가방을 들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