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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택배기사입니다
11화
어딜 가나 스스로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하는 시대
by
김희우
Aug 27. 2022
각 택배사마다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내가 느낀 바로 많은 택배기사들이 CJ대한통운을 가장 선호하는 것 같다.
다른 택배사에 비해 보다 효율적인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CJ
대한통운은 국내 물류 시장에서 가장 계약이 많다 보니 화물을 집결하고 분산하는 중심지 역할의 물류거점이 많고, 그에 따라 전문화된 인력 또한 그에 맞게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택배기사 입장에선 물량이 많으니 벌어갈 수 있는 돈이 많고 같은 물량이어도 다른 택배사에 비해 배송 구역이 좁으니 일은 더 빨리 끝난다.
또한 CJ대한통운은 2016년부터 ‘ITS(Intelligent Scanner)’와 ‘휠소터(Wheel Sorter)’를 도입하면서 택배 현장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ITS는 ‘정밀 화물 체적 측정 기술’를 뜻하는데 터미널에 도착한 택배 상자의 무게를 측정하고 자동으로 이미지를 저장하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택배 상자 위에 붙어있는 운송장 바코드를 인식해서 배송 지역별로 택배를 자동으로 분류될 수 있게 한다.
휠소터는 택배들을 지역별로 자동 분류해 택배기사 앞까지 상자를 전달해 준다.
과거에는 기사들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 바짝 붙어 빠르게 움직이는 택배 상자들을 육안으로 살피며 송장에 적힌 주소를 판별해 손으로 직접 분류했는데, 현재는 휠소터가 지역별로 자동 분류해 택배기사 앞까지 상자를 전달해 주기 때문에 택배기사들의 작업 능률이 대폭 향상되었다.
ITS와 휠소터 덕에 많은 물류 혁신이 일어났고,
CJ
대한통운은
동종업계에 비해 기술격차가 3~5년 앞서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자동화 기술은 물류 관제의 효율성을 높였고 이는 택배기사의 작업 능률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업무 피로를 낮추었다.
또한 고객에게는 신속하고 신뢰할 수 있는 물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타 택배사보다 일이 효율적이고 벌이가 좋다는 인식이 있어 자리가 나면 지인들끼리 소개로 후임자를 금방 구한다.
자신의 자리를 친인척이나 자식에게 넘겨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택배기사는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자식에게 준다고 해서 취업 비리도 물론 아니다.
이직이나 퇴직으로 자리가 나는 경우에는 택배기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개인이 구인공고를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사무소에서 ‘알음알음’ 후임자를 구해준다.
예전에는 그만두는 기사 본인이 커뮤니티에서 후임자를 직접 구하는 경우 그 자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권리금을 받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을 뽑을 때, 인수인계 기간이 짧은 타 택배사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에 나처럼 2주 조금 넘는 경력이 다인 초짜가 바로 CJ 택배기사가 된 건 정말 운이 좋은 거였다.
그나마 이전의 짧은 경력이 힘들다고 소문난 생수배달이었기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알아보고 다녔기에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 자리의 전임자분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만약 그도
사무소에서 사람을 구해주길 기다리기보다 택배 커뮤니티에서
스스로 후임자를 알아보았다면 아주 작은 노력으로 쉽게 후임자를 구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이직을 마음먹고 5개월이나 일을 더 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실제로 1년 후 내가 일을 그만둘 때 스스로 사람을 구하자, 자리를 넘겨주는 데 대한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전부 무상으로 넘기는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고 물어오는 경우였다.
물론 그 사이 내가 내 구역을 더 편하게 만든 것이 한몫하기는 했지만, 돈 받고도 팔 수 있는 자리를 5개월 동안이나 붙잡고 있는 건 참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잘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해왔다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부끄러움과 귀찮음을 감내하고 스스로 움직여야 기회가 온다.
택배 일을 통해 얻은 큰 깨달음 중 하나다.
평범했던 사람이 유튜브나 틱톡을 통해 큰 부자가 되고,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두세 명으로 이루어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수십억을 투자 받고 성장하는 유니콘 기업이 되기도 하는 시대다.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 기회를 찾아 나서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닐까.
칩거 생활에 들어가며, 회사 대표 시절 작게나마 여기저기 올라갔던 나에 대한 언론 기사들을 모조리 내린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누가 애써 나에 대해 검색해 보지 않는 한 어디 노출될 일도 없고 알려질 일도 없는 기사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얼굴과 이름이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돌아다니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기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해 기사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카톡에도 내 사진을 올리지 않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태도가 내게도 올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차단한 것이 아닐까 조금은 후회가 된다.
여전히 나는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게 부끄럽다.
만나보고 싶던 존경하던 사람에게 디엠이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역시, 무시당하진 않을까, 아니 무시당하는 건 차라리 낫지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게 아닐까 겁이 난다.
하지만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말을 건다는 거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오는 이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물론 있지만, 그건 그들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거나 그들 역시 상처받은 상태여서다.
스스로 당당하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선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용기 내어 말 걸어오는 이를 결코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도와주고 싶어 한다.
부끄러워 말을 조금 더듬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능숙하게 말을 거는 게 오히려 사이비 종교를 전도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꼭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나는 새로운 기회가 필요할 땐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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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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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택배 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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