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도 많은데 택배기사를 한다고?

by 김희우

“나 택배기사 됐다.”

자랑스럽게 주변에 얘기하자 대부분의 친구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침묵을 택했다.

대기업 사무직 친구는 대놓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와, 누가 보면 대기업 공채라도 된 줄 알겠다. 그게 그렇게 좋냐?”

허물없는 사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 내포된 약간의 편견과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둔하진 않았다.

물론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 일을 할거였고,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나서 세상에 다시 나온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친구는 바로 자신의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택배기사는 얼마 버는데?”

“매달 다르지만 내가 가는 자리는 이거저거 다 떼고 월 평균 4, 500 정도 되는 거 같더라”

친구가 이어 물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냐?”

“아니 하루 7-8시간 일하는 기준으로 그만큼 벌어가는데 전임자분 보니까 많이 일한 달은 800만원대도 벌어갔더라. 근데 난 그렇게까진 못할 거 같아서.”

친구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근데 택배기사는 좀 그렇잖아. 일도 힘들고, 세상에 할 일도 얼마나 많은데”

친구의 말에 나는 적당히 무시할까 하다, 마음에 담아두는 것보단 제대로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꼰대질을 택했다.


“일 힘든거야 모든 일이 그 일 나름의 힘든 점들이 있겠지.

대기업 신입사원은 뭐 안 힘드냐?

대기업 사무직이나 택배기사나 다 사람 하는 일이고 세상에 필요한 일이야. 넌 택배 기사 없이 살 수 있어?”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다른 친구가 끼어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야”


나는 친구의 말 ‘세상에 할 일도 얼마나 많은데.’ 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당시 나에게는 수많은 일 중에서 택배를 선택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년 6개월 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뭐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도저히 당시 멘탈로는 일반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다.

얼마를 벌든 매일 사람들과 치이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었다.

택배기사는 혼자 하는 일이니 그런 위험이 없었다.

그리고 매일 많이 걷고 힘을 쓰니까 자연스럽게 운동도 되고 잡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밤에 잠도 잘 올 것이고 나에게는 이만한 일이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게는 몸으로 하는 것, 특히 노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택배 상하차를 해본 적은 있지만 공사판이라든지, 육체노동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일을 본업으로 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나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노동 중에서도 중노동인 이 일에 적응하면 앞으로도 사는데 어떠한 일도 못할 것 없다는 자신감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 위해 돈도 빌리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얼굴에 철판 깔고 현업 기사들을 직접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그렇게 노력 끝에 자랑스럽게 시작한 택배 일은 마침 근무 조건도 나와 딱 맞았다.

살던 집에서 터미널이 차로 3분 거리밖에 안되었으며, 회사처럼 입고 나갈 옷이나 머리 스타일에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또 혼자 배송하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건 팟캐스트를 듣건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시야는 확보해야 했지만 귀는 자유였다.

업무시간 중 틈틈이 강의를 들으며 지식을 쌓고 공부를 하는 등 자기계발을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었다.

택배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송하면 일한 만큼 돈이 따박따박 들어오니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설레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 택배 일은 내가 다시 세상과 마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적의 일이었다.


생각의 정적을 깨니 친구가 웃으며 말을 걸고 있었다.

“야 첫 월급 받으면 술 한번 사라니까.”

내가 말했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때 내가 너무 힘들다고 징징거릴수도 있는데.”

내가 툴툴대자 친구가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넌 분명 잘할거야, 안주 맛있는 걸로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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