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배달이든 일반 택배든 택배일에 있어 일자리란 ‘구역’을 뜻한다.
한 사무소(이하 대리점)가 큰 단위의 지역을 담당하고 그 대리점에 속한 택배기사들은 그 지역을 케이크처럼 나누어 각자의 구역을 분배받는 식이다.
대리점이 담당하는 구역은 대리점마다 다 다른데 내가 일하게 된 대리점은 7명의 택배기사가 두 개의 동을 나누어 맡았다.
택배기사는 본인이 담당한 구역의 모든 배달을 책임지며, 일을 그만둘 때는 그 구역을 담당할 후임자를 미리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구해질 동안 그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택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들이 파업을 할 때 어떤 지역은 배달이 되고 어떤 지역은 안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택배 파업 때 배달이 안 되는 곳은 그 구역을 맡은 기사가 파업에 동참해서 그런 것이고, 되는 곳은 그 구역 기사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같은 지역이어도 그 지역을 나눠 맡은 택배기사들의 파업 동참 의지에 따라 어떤 집은 배달이 되고 다른 집은 배달이 안 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택배 일은 사무소(이하 대리점)에 소속되어 소장에게 월급을 받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각 구역을 담당하는 대리점과 소장이 있고, 번 돈에서 수수료를 떼어줘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개인 소유의 화물차로 그 구역에서 본인이 배달한 수량만큼 벌어가는 개인 사업이다.
인수인계 첫날, 아침 7시에 출근 후 택배기사들이 말하는 까대기(분류작업)와 상차를 끝낸 후 전임자의 화물차에 동승해 담당 구역과 주의사항을 안내받았다.
“이 자리 사람 구하는 데 다섯 달이나 걸렸어요.”
전임자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자리를 소개받았을 때는 ‘마침 나간다는 사람이 있더라’ 정도만 전해 들어서 내가 운이 좋다고만 생각했지, 후임을 구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는 택배 일자리를 인터넷으로는 도무지 찾을 수 없어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서 구하고 다녔는데, 한쪽에서는 후임을 구하지 못해 몇 달 동안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니.
“이 자리에서 몇 년 일하셨는데요?”
“3년 일했어요. 우체국 집배원으로 이직합니다.”
우체국으로 간다니, 대체 무슨 이유인가 궁금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전임자가 피식 웃었다.
”우체국 택배는 연금이 있거든요. 뭐 벌이는 여기보다 좀 적을 순 있어도 거긴 준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죠.”
소소한 대화로 새로운 정보도 얻었다.
바깥에서 볼 때는 ‘택배기사’라는 한 덩어리로 보였던 직업이었는데 직접 이 세계로 들어와 살펴보니 택배사마다, 각 사무소마다 다 일의 난이도도 일하는 방식도 달랐다.
사무직 일들과 똑같이 선호되는 곳이 있고 ‘공무원’으로 여겨지는 곳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어쨌든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직하게 돼, 나는 운 좋은 ‘중고 신입사원’ 마냥 신이 났다.
일주일의 인수인계 기간 동안 내가 맡은 자리가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맡게 될 구역은 기숙사와 관리사무소를 포함한 대학교 내 건물 19개와 일반 번지였다.
대학교 건물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있고 건물마다 빼곡히 들어찬 사무실이며 강의실마다 택배를 직접 갖다 줘야 했다.
일주일 평균 하루 배달 물량은 300개 정도로 수입은 나쁘지 않았지만 배송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대학교 자리가 있어 기사들이 기피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자리라도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택배는 옷이나 작은 물건, 책 한 권처럼 가벼운 물건들도 많았다.
배달 한 건 당 받는 돈은 평균 750원으로 900원인 생수와 비교하면 큰 차이지만, 무거움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택배가 개인적으론 더 나았다.
티셔츠 한 벌이 든 작은 비닐봉지를 2층까지 가져다 놓는 것과 2리터짜리 생수 6개 한 팩을 2층까지 가져다 놓는 것이 겨우 150원 차이라고 생각하니 배송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수를 들고 나르면 나중엔 한 걸음이 1km 같아져서 똑같은 거리를 가도 다섯 배는 피곤했다.
남들이 다 고개를 저으며 기피하는 자리일지라도, 인수인계 기간 동안 출근길의 내 발걸음은 누구보다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