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의 어머니 찬스

by 김희우

“돈 좀 빌려주세요.”

어색하게 생전 처음 해보는 말을 꺼냈을 때, 어머니는 조금 놀란듯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 있니?”

걱정스러운 물음에 흔쾌히 택배 일을 할 거고 차 살 돈 800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빚을 지거나 하진 않았다는 점에는 안심하는 것 같았지만, ‘택배’라는 단어에 사색이 되었다.

“안돼. 돈은 빌려줄 수 있지만 택배는 안돼.”

“빠른 시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에요.”

“힘든 일이니까 돈을 많이 주는 거지. 어쨌든 안 돼. 몸 상해.”

생각지도 못했던 강경한 반대에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머니한테 돈을 빌리는 게 지금 내가 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년 반의 정체기와 메마른 통장 잔고는 은행권에서의 정상적인 대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3개월의 아르바이트 경력 가지고는 대출은커녕 통장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려웠다.


“저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새로 사업을 하든 뭘 하든 다시 시작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제가 합법적으로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건 이 일밖에 없어요.

계속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순 없잖아요.”

어머니는 한참 말없이 나를 보다가 한 마디를 했다.

“내가 그런 일이나 시키려고 널 이렇게 힘들게 키운 줄 알아?”

어머니의 말에는 많은 것이 함축돼 있었다.

‘그런 일’이라고 비하하고 싶은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어머니의 심정도 이해는 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고집스레 선택했다.

어머니는 남다른 교육열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분이었다.

아버지의 잇따른 투자 실패 때문에 집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강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해주고자 했다.

다만 어머니의 기대보다 내 고집이 더 강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내게 기대가 컸다.

특히 학교 성적에 대한 기대가 커서 만점, 1등이 아니면 내심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셨다.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학교 공부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운동신경이 좋고 또래보다 발육이 좋은 편이라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에너지를 분출했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시절엔 전교에서 벌점이 두 번째로 높은 문제아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억울한 측면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때리고 다니거나 협박하는 소위 ‘일진’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학교 시절의 남자아이들을 지배하는 힘의 논리와는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전교에서 왕따 당하는 친구랑 어울려서 ‘왜 그런 아이랑 어울리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내가 공부 쪽으로 소질이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어머니는 나에게 운동을 배우게 했다.

태권도와 합기도 같은 비교적 평범한 종목부터 시작해 야구, 골프, 킥복싱까지, 안 배운 운동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스포츠들은 나를 더욱 운동신경 좋은 말썽쟁이 소년으로 만들었을 뿐, 체육 꿈나무로 자라나게 하진 못했다.

나는 모든 운동들을 어느 정도는 다 빨리 배우고 잘하는 편이었지만 어떤 운동도 내 장래로 삼을 만큼 재미를 붙이지는 못했다.

지금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한 운동을 시작해 평생을 그 종목에 바치는 스포츠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이해는 잘되지 않는다.

운동이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인데, 어린 시절에 평생 몰두할 업을 결정한다니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자라나는 내내 어머니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던 나는 고등학교 때는 헤르만 헤세를 시작으로 고전문학에 빠져 공부는 뒤로하고 소설책만 잔뜩 읽었다.

졸업할 무렵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평생 어머니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집구석에 틀어박히더니 갑자기 ‘택배 일’을 하겠다고 나서다니. 어머니로서는 당황스러웠을 거다.

‘택배’를 진지한 업으로서 해보겠다는 선언은 택배 상하차나 주유소 일 따위를 아르바이트로 하겠다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일이었고 어머니도 그걸 알았다.

하지만 어쩌나, 나는 이번에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택배도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요즘 사람들 택배 기사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그리고 나 정말 절실하게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내 힘으로 1억 벌어볼게요.

그러고 나서 다시 시작할 거예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잃었던 돈 8천만 원, 누구는 적다고도 할 수 있는 돈이죠.

요즘 서울에선 반지하 방 전셋값도 안 되는 돈이에요.

물론 제가 그 돈의 액수 때문에 그동안 집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기회비용이 더 컸고, 소송을 진행하면서 나 자신이 너무 많이 소모됐고,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결국 모든 건 그 돈 8천만 원이 원인인 건 사실이잖아요.

다시 벌어보고 싶어요. 사업같이 하던 사람들이, 어쩌면 내 친구들이 가장 밑바닥으로 보는 그 자리에서 내 힘으로 땀 흘려 벌어볼 거예요.

도와주지 못하시면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 볼게요. 얘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그날이 가기 전에 어머니는 1000만 원을 입금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훗날 통장에 조용히 찍힌 그 액수를 보고 나는 조금 먹먹해졌다.

3개월 안에 갚아드리자.

이렇게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트럭 매물을 찾기 시작했다.

keyword
이전 04화택배 사업 자금 마련기, 커피 로스팅 알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