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반가운 막막함에 대하여

막막함을 껴안다

by 곽윤정


사람들이 안정적이라고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잠시라도 다니면서 낯섫었던 순간이 많았다.

53살에 공채에 합격했다는 기쁨도 잠시

때로는 낯섫음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안온한 한기를 느끼며

온실 속의 화초가 될 수 없는 태생적 기질과 한계를

미워했고 스스로를 탓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편입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나의 두려움이 낯섫음에서 온 고통이었다면,

편안하고 변수가 적고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내가 느낀 고통은 치열함의 상실이었다.


경제적인 안정감만으로

보상되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있더라는

깨달음이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투정일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한다.


최선을 다하려는 움직임은

시스템 안에서 적절하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았고,

나는 그곳에서 부적절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균형잡히지 않은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밤을 세워가며 일하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필요없는 일이라해도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위해

잠을 설치는 자발적 이단아가

있어야할 곳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임금피크제로 퇴직 전

비자발적으로 주3일을 근무하면서

다시 막막함을 느낀다.


두렵다.

이 막막한 순간들.

가장 편안하다고 하는 시간에 느끼는 불안함


그런데, 이 막막함에 대해

익숙한 기시감을 느낀다.


19살의 던져진 삶에 비하면

이 막막함은 훨씬 견딜만한 막막함이다.


Welcome!

환영한다.

인생의 막막함을 다시 껴안아보자.

이제는 19살의 그날이 아닌,

59살의 내가 그 어린 날의 나에게

손내밀어 본다.


안녕, 막막함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새롭게 창조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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