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끌어안기
나이가 주는 깨달음일까?
아니면 자기객관화로 바라본 깨우침일까?
나에게는 쉽게 깨트릴 수 없는 태생적 결핍과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안녕? 나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타인에게 물었던 안부를 나에게 묻는 소박한 시간
가끔씩 이 나이에도 길을 잃은 듯한 패배감,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주변인 같은 느낌은
나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도 그러하리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숙명적으로 껴안고 살아가는
태생적 결핍을 어찌하랴?
조금의 성찰이 주는 선물로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부족한 나를 내가 이해하듯이
타인의 부족함과 어리석음 또한 어찌하랴?
며칠 전에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2층의 집에서,
세상에 온전히 비춰지는 공간에서,
가난이라는 두려움에 쌓여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8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서
죽음과 싸우고
동생들은 어찌된 일인지 다시 어린아이들이 되어있고
내 어머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꿈 속에서도 우리의 가난이
투명하게 비치는데 햇살은 너무도 밝았다.
가난이란 이런 것이다.
무의식의 고통과 결핍이란 이런 것이다.
내 의지로 극복되지 않는 무작위의 고통을,
더 이상 거부할 수도 없는 끈끈한 시간을
꿈 속에서라도 곁에 두는 두려움
의식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살아갈 힘이 있지만
무의식의 나에게는 살아갈 힘이 없다.
그런데 아는가?
나는 의식도 무의식도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오래 전에 잊은 줄 알았던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고통이 되어 나를 머무르게 했고
고통이 되어 나를 자라게 했다.
안녕? 다시한번 나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타인에게 물었던 안부를 나에게 묻는 소박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