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해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가한 주말 오후의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강아지 옆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나는 지금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이 나를 강하게 해주었을지는 몰라도 힘들게 한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은 짧고 인생의 고통은 길다.
행복과 고통으로 짜인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
누군들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으랴?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고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찰라의 즐거움이 아닌 것을 무조건 고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고요함과 적막함이 주는 행복
누군가를 이해해보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편견없이 바라보는 행복
해결할 문제를 잠시 미뤄두며 누리는 행복
불가에서는 고통에는 이유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고통을 벌벌 떨면서 살아내려고 애쓰는 것보다
고통을 피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보다
고통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쪽이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차마 고통에 이유가 있다고 말하기는 두렵다.
수없이 많은 이 세상의 슬픔과 고통에
어떠한 이유가 있다한들
혹은 많은 것이 우연이라한들
그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의
삶의 결에 따라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삶의 결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잔의 커피가 주는 행복
잠깐의 햇살이 주는 행복
평범한 시간의 축복
살아보니
아는 것 보다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는
깨달음의 축복
고통의 견딤도 문제지만
행복 강박증도 문제라는 생각은 든다.
반드시 꼭 언제나 내가 행복할 필요는 없다.
반드시 꼭 고통과 불행이 나를 피해야 할 이유도 없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한 잔의 커피를 다 마셔가면서
다시 생각한다.
고통 때문에 강해졌는가?
고통 때문에 약해졌는가?
내가 생각한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니체의 생각에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고통은 죽음과도 같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죽이지 못한 고통으로
더 자유롭고 강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