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시간의 숲
숲에 첫 발을 딛자마자 이상한 느낌이 밀려왔다.
나뭇잎이 떨어지다가 공중에 멈춰 있고, 나뭇가지 끝 물방울은 떨어지다 말고 점처럼 멈춰 있었다.
나나가 손을 한번 흔들자 물방울이 딱 한 칸 미끄러지더니 다시 멈췄다.
마치 세상이 한 칸, 한 칸 끊겨 있는 것 같았다.
피핀이 낮게 말했다.
“여긴 아무 때나 움직이지 않아. 너희가 정한 규칙대로 움직이는 곳이야.”
유진이 물었다.
“그럼 우리가 같은 간격으로 움직이면, 그때만 길이 따라 움직인다는 거야?”
“맞아. 그리고 왜 그렇게 하는지 말로 설명해 줘야 해.”
피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 가장자리에 납작한 돌들이 아주 희미하게 빛났다.
가까이 보니 돌 표면마다 도형이 새겨져 있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모양이 다 달랐다.
도형 밑에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바람은 3칸마다 스친다
그림자는 4칸마다 흔들린다
빛은 6칸마다 번쩍인다
유진이 무릎을 탁 쳤다.
“셋이 같이 멈추는 순간에 움직여야 안전하겠네!”
나나가 빠르게 덧붙였다.
“그런 순간은 최소공배수로 찾아. 3과 4와 6의 최소공배수는 12니까 12칸마다가 가장 좋아.”
피핀이 웃었다.
“좋아. 그럼 열두 칸 움직이고 멈추자. 그리고 이유를 말해.”
세 친구는 발걸음을 맞춰 움직였다.
나나는 손가락으로 조용히 세었다. “하나, 둘… 열둘.”
그때마다 바람도, 그림자도, 빛도 동시에 고요해졌다.
나나는 오각형이 새겨진 돌과 육각형이 새겨진 돌들 중에서 육각형으로 발을 옮겼다.
유진이 속삭였다.
“왜 육각형이야?”
나나가 또박또박 답했다.
“우리가 잡은 수가 12잖아. 6은 12를 똑같이 나눌 수 있는 수라서 더 안전해.
5는 12랑 잘 안 맞아서 흔들려.”
나나는 규칙을 정리했다.
“첫째, 열두 칸마다 멈추고 움직인다.
둘째, 발판은 12를 똑같이 나눌 수 있는 수(3, 4, 6 같은)와 관련된 도형을 먼저 고른다.”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5나 7 같은 것은 피하고, 3·4·6을 중심으로 갔구나!”
잠시 뒤 길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
돌판 위에 세 줄의 도형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삼각형 → 오각형 → 육각형
사각형 → 삼각형 → 사각형
오각형 → 육각형 → 오각형
유진이 셈했다.
“왼쪽은 3-5-6, 가운데는 4-3-4, 오른쪽은 5-6-5.”
나나는 중얼거렸다.
“5가 끼면 12랑 잘 안 맞아. 가운데 길은 4, 3, 4라서 끝까지 안정적이야.”
피핀이 말했다.
“그럼 가운데로 가자.”
그때 공기가 낮게 울렸다. 숲 그림자가 길 위로 두터워지며 익숙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열둘을 기다리다 늦으면, 네가 아끼던 시간은 다 어디로 가나?”
케일러스였다. 그의 목소리는 달콤한 약속처럼 들리다가도 차갑게 바뀌었다.
“빨리 가고 싶지 않니? 규칙은 느리다. 나는 결과만 보겠다.”
나나는 단호히 말했다.
“근거가 더 중요해. 우리는 12칸마다 움직이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했어.”
순간, 바람은 3칸마다 그림자는 4칸마다 빛은 6칸마다 따로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진이 놀라서 서둘러 두세 칸 더 내디뎠다.
바로 그때, 풍경이 뒤로 살짝 감기며 방금 전 갈림길 앞으로 돌아왔다.
유진이 식은땀을 훔쳤다.
나나는 또렷하게 말했다.
“규칙 다시 확인! 3·4·6이 같이 맞는 수는 12. 열두 칸마다 움직인다.”
케일러스의 그림자가 스르르 물러났다. 길은 다시 조용해졌다.
길은 넓은 공터로 이어졌다. 가운데에는 돌기둥이 셋 서 있었고, 각각 다른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2칸 가기
5칸 가기
8칸 가기
그 아래에는 작게 등차라고 적혀 있었다.
유진이 금세 알아차렸다.
“2, 5, 8… 매번 3칸씩 늘어나는 규칙이네.”
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간은 열둘로 맞추고, 거리는 세 칸씩 늘린다.”
피핀이 웃었다.
“아주 좋아.”
길 끝에는 돌기둥이 하나 서 있었다. 표면에는 원이 세 개 겹쳐 그려져 있었고,
세 원이 겹치는 때에만 문이 열린다고 쓰여 있다.
유진이 물었다.
“원은 뭘 뜻하지?”
나나는 손가락으로 원을 따라 그렸다.
“아까처럼 바람은 3칸마다, 그림자는 4칸마다, 빛은 6칸마다 움직인다고 했지?
셋이 같이 멈추는 때는 12칸마다야.”
피핀이 손뼉을 쳤다.
“그 규칙대로 잠깐 기다리자. 12, 24, 36… 셋이 완전히 겹치는 순간을 잡는 거야.”
12에서는 조금 흔들리고, 24에서도 미세한 떨림이 남았다.
36에 이르자 공기가 얇게 울리며 세 원이 딱 포개졌다.
돌기둥의 그림자가 정사각형으로 변했고, 바닥에 네 모서리가 뚜렷한 문이 떠올랐다.
유진이 감탄했다.
“왜 사각형이지?”
피핀이 답했다.
“네 조각으로 똑같이 나눌 수 있어서 문을 만들 때 안전해.
네 모서리를 차례대로 눌러 보자.”
나나는 문틀 네 모서리에 손을 갖다 댔다.
“대칭이 맞아야 문이 열린다. 하나, 둘, 셋, 넷.”
사각형 문이 스르르 내려앉으며 입구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