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잘못, 지금의 법으로 심판할 수 있을까?

법은 때로 이미 끝난 과거를 새롭게 정의한다

by 곽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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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친일행위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거대한 폭력의 그늘 아래, 누군가는 협력했고, 누군가는 고통받았다.
해방 이후 수십 년이 흘렀고, 그 시절의 어두운 기억도 점점 흐려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는 ‘친일재산’ 환수 작업에 나섰다.
“그건 정당하게 얻은 재산이 아닙니다. 국가에 귀속되어야 합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과거의 행위에 대해 지금의 법으로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이미 끝난 과거의 일에 대해, 나중에 만들어진 법을 소급해서 적용할 수 있을까?
이걸 우리는 ‘진정소급입법’이라고 부른다.

법은 원칙적으로 이런 방식에 신중하다.
모든 법은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 위에서 작동한다.
우리는 지금의 법을 기준 삼아 행동하고, 그 기준이 미래에도 유효하길 기대하며 산다.
그런데 그 기준이 뒤바뀌고, 이미 끝난 과거에 새로운 잣대를 들이댄다면,
우리는 어떤 시절을, 어떤 기준으로 기억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하지만 법도 때로는 예외를 허락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말했다.


“예측 가능성이 있었거나, 그 신뢰보호보다 훨씬 중대한 공익이 있다면
진정소급입법도 허용될 수 있다.”
— 헌재 1998.9.30. 선고 97헌바38


친일재산은 불법적 이익이었고, 애초에 보호받아야 할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재산을 되찾는 일은, 단순한 소급이 아니라 국가의 기억을 바로잡는 일,
즉 역사의 정의를 회복하는 행위였다.

여기서 우리가 곱씹어야 할 건 단순한 판결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법은 과거를 다룰 때조차도 항상 조심스럽다.
과거를 평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동시에,
그 평가가 또 다른 불공정이 되지 않도록 균형이라는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한다.

소급입법은 위험한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법은 늘 되묻는다.
“이 조치가 정말로 지금의 정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과거를 끌어와 누군가를 벌주기 위한 것인지.”

그 경계는 법이 결정하지만,
그 질문은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때때로 과거를 묻기 위해, 오늘의 법을 꺼내든다.
그때 법이 말하는 건 한 가지다.


“이건 단순한 소급이 아니라,

사회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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