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폐기물처리업체가 사업을 준비했다.
관할관청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고, 곧 통보를 받았다.
“귀하의 사업계획은 적정합니다.”
‘적정하다’는 말에 업체는 안심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토이용계획 변경도 잘 풀리겠지.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뒤, 관청은 국토이용계획 변경 신청을 단호히 거부했다.
업체는 당황했다.
“계획이 적정하다고 해놓고, 왜 거절하시는 겁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행정청의 긍정적 언급은 ‘공적 약속’처럼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법은 달랐다.
“적정하다는 통보는,
그 사업계획이 법적 기준에 적합하다는 사실판단에 불과하다.”
“국토이용계획 변경까지 승인하겠다는 공적 의사표시로 볼 수는 없다.”
— 대법원 2005.4.28. 선고 2004두8828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행정청이 한 말은 언제부터 책임져야 할까?”
행정청의 언어는 종종 중립적이고 추상적이다.
"검토하겠습니다", "적정합니다",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표현은
상대방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들이 사람들의 기대를 낳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믿고, 계획하고, 투자를 시작한다.
때로는 건물의 설계를 바꾸고, 돈을 빌리고, 사람을 고용하기도 한다.
행정청의 말은 삶의 결정을 촉진시킨다.
그러나 법은 말한다.
“행정청의 언어가 법적 책임을 지려면,
그 말이 공적인 견해표명으로서의 외관과 근거를 갖추어야 한다.”
단순한 사실 확인, 내부 검토의 결과는 약속이 아니다.
이 판례는 행정청과 국민 사이에 놓인
"절차의 간극"을 보여준다.
계획이 ‘적정하다’는 말과,
그 계획을 위해 토지 용도를 바꾸는 승인은 다른 차원의 행정절차다.
우리는 행정기관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약속인지,
아니면 단지 진행 중인 하나의 관찰 보고서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 한 마디에 기대를 걸고,
그 기대가 무너질 때 삶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본다.
공공의 언어는 언제부터 약속이 되는가?
단지 '적정하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겐 확신이 되고,
말한 사람에겐 단지 의견이지만,
그 사이에는 사람들의 시간과 돈과 인생이 걸려 있다.
행정법은 그 간극을 지키려 애쓴다.
말이 전부 책임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언젠가는 어떤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는다.
“그 말은 나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