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청은 왜 약속을 번복하는가?

행정은 멈춰 있는 존재가 아니다

by 곽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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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씨는 대전의 한 땅에 주택을 짓고 싶었다.

그런데 그 지역은 도시계획상 단독주택이 허용되지 않는 구역이었다.
그래서 C 씨는 먼저 ‘사전결정’과 ‘심의’를 신청했고,
행정청은 이렇게 말했다.
“법령과 기준에 따라 보면, 건축은 가능해 보입니다.”

그 말은 C 씨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가능하대! 이제 승인만 받으면 돼.”
그는 건물을 짓기 위한 후속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 사이 도시계획이 바뀌었고,
대전시장은 더 이상 해당 부지에 주택을 지을 수 없다며
최종적으로 승인을 거부했다.

C 씨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안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는 신뢰가 배신당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법은 이렇게 말했다.


“공적인 견해표명은 그 당시 조건에서 유효할 뿐,
시간이 지나 법령·정책·상황이 바뀌면 별도의 통보 없이도 실효된다.”
— 대법원 1996.8.20. 선고 95누10877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지게 된다.
공적인 발언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행정청이 어떤 방향을 시사했다면,
그 말에는 어느 정도의 무게와 책임이 따를까?

사람들은 공무원의 말을 믿는다.
허가 가능성을 보였다는 말은 누군가에겐
인생의 계획을 수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하지만 행정은 멈춰 있는 존재가 아니다.
도시의 정책은 달라지고, 사회적 요구는 바뀌고,
법령도 시간에 따라 수정된다.

그 변화 속에서, 예전에 했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것,
그건 어쩌면 정책의 유연성을 마비시키는 위험일 수 있다.

행정법은 여기서 **‘신뢰보호의 원칙’**과
‘사정변경에 따른 실효의 원칙’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모두가 믿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만,
공익이 달라졌을 때는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정책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판례는 말한다.
신뢰는 지켜져야 하지만,
그 신뢰의 유효기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 말이 만들어진 상황이 달라졌다면,
그 말 역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말을 현재의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행정의 언어는 시간의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약속이 된다.
단순한 긍정의 뉘앙스, 가능성의 표현은
‘말’일 뿐이지, ‘책임’은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다시 묻게 된다.
“당신이 믿었던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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