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발길질
네 번의 발길질
'언제부터 잠들었는지' 무거운 눈꺼풀, 희뿌연한 안갯빛 어둠. '곧 어두워지려나, 아니 밝아지려나' 수천 년 마취에서 깨어나도 가시지 않을 옆구리 통증, 발길질받은 듯, 손으로 옆구리를 쓱쓱 문지른다.
1/4. 발길질 하나, 2014년 여름
캐나다에서 돌아온 아내. 그날 저녁, 와이프는 나에게 말했다. "나, 조직검사에서 유방암이라고 나왔어. 큰 병원 가보래." 서울아산병원에서 CT촬영을 거쳐 유방암 확정 진단을 받았다. "지금 초기니 전절제 수술하고, 복원 수술 동시에 하면 됩니다."라고 담당 의사는 말했다. "인터넷 떠도는 이런저런 얘기 믿지 마세요!" 진료실 나오기 전 함께 있던 레지던트는 조심스레 다독여 준다. '그 말을 왜 했지'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며칠 후 아내는 "나 자연 치유할래"라고 말했다. 그 뜻이 뭔지 알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초기니까, 설마 수술하겠지.' "병원 가자. 수술하자."라고 말하면, 채소를 다듬던 손을 빠르게 움직인다. 슬쩍 쳐다보고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 뿐. '아직도 내 마음 모르겠냐?'는 듯하다. 병원 치료에 대해서는 아예 말조차 못 꺼내게 한다. '아니 혹시 나를 위해선가?', '가슴 손상 안 하려고, 설마' 나는 그때부터 와이프를 여자로 볼 수 없었다. 와이프는 한 번씩 나에게 말했다. "왜 나 그냥 두는데, 그렇지 나는 그냥 환자로 보이겠지" 차마 난 말할 수 없었다. '너 유방 없어도 널 사랑한다.'라고, '유방암 수술 안 하는 건 못 참는다'라고 아내의 자연치유 결심은, 내 마음속 깊이 삼키는 쇠 같은 차가움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발길질이다. 그 아픔은 마음속 깊이 가라앉는 상처가 되었다.
2/4. 발길질 둘, 2020년 여름
"나 평창 갈래", "무슨 소리야? 은평성모병원 외래 진료 예약은 어떻게 하고?", "취소 전화 해줘" 며칠 전 심한 겨드랑이 부종 고통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고, 잠시 동안의 코로나 검사 결과 기다리는 시간에도 "자기야 왜 빨리 안 들어가니?"라며 뒷좌석에서 울먹이던 와이프. 응급실에서 만난 당직 의사 말 따라, 유방외과 외래 진료 예약을 하고 퇴원했으니, '아 이제라도 치료받겠구나'라고 안도하던 나에게, 와이프는 자연치유를 고집하며 평창으로 가겠다고 한다. 말리는 나와 갈려는 와이프. 빠른 발걸음으로 옷방에 가더니 짐 가방을 주섬주섬 싸는 와이프, 뒤 따라 들어서며 말리는 나의 손짓에 결국 힘에 부친 듯, 와이프는 나에게 발길질로 그녀의 뜻이 확고함을 알렸고, 나 또한 발길질하면서 "못 보내준다"라고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라고 소리쳤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밤에 처형들까지 집으로 왔다.
결국 며칠 후 나는 와이프를 평창으로 바래다주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잘 지내.."라는 말 미처 끝내지 못하고 울먹이고 말았다. 은평성모병원 유방외과 진료 예약, 취소를 하지 못하고, 나 홀로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다가 숨 가쁘게 왈츠를 토해내는 휴대폰 소리에 벌떡 앉았다. "○○○님 진료 오셨나요?" "아뇨" 나 혼자 진료실 안에서 와이프의 유방암 발생 시기와 지난 몇 년간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였다. 담당 교수분, "언제라도 오십시오, 예약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감사를 표하고 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발길질에 차인 듯, 비틀거리며 걷는 줄도 몰랐다.
3/4. 발길질 셋, 2022년 봄
새벽 6시, 간이 의자를 펼쳐 그 위에서 잠을 뒤척이다, 그나마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 당직실 간호사 오셨다. "지금 내려가서 X-ray 검사하고 오세요" 잠결에 깨서 급하게 검사실로 향한다. "아직 춥네 따뜻하게 입고 가자" 며칠간 휴일이었기에, 검사실은 이미 입원 환자들만으로도 붐빈다. X-ray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와이프는, "엔허투 항암부작용 아니었으면 좋겠다. 엔허투 항암 계속해야 할 텐데"라고 간절한 마음을 내비친다. 와이프는 그동안 여러 가지 표적항암제를 사용하여 왔지만, 부작용 발생으로 인하여 한 가지 항암제를 오랜 기간 사용하지 못하였었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그럼! 걱정하지 마!"
오전 회진 시간에 들르신 담당 교수님, "폐 증상 별 것 아니더라, 아마도 지난 방사선치료 때문이었던 듯하다. 가슴, 목 혹도 그전부터 있던 것이다. 암세포 아니다. 자라지도 않고 그냥 둬도 된다. 산소호흡기 안 해도 된다. 엔허투 항암은 2 주 정도 쉬자." 마음이 편하다. 교수님 한마디 한마디 우리는 행복한 마음이다. 내일 퇴원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입원하면 된다. 중간진료비 도 미리 확인한다. 입원비는 많지 않다. 잠시 한숨 돌 릴 여유를 가진다. "누가 자연 치유하라고 했어?" 수차례 물어봤지만 대답 않는 와이프, 아니 도리어 화를 낸다. 자리를 피해버린다. 와이프 마음 알 수 있다. 본인이 어떻게 되더라도, 나중에라도 나와 그 사람, 불편한 사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또 헛 발길질한다.
4/4. 발길질 넷, 2023년 겨울
사랑의 끝은 어디인가? 있기나 한가? 강릉 영진해변 도깨비촬영지 앞 카페, 옥상 테라스 앞 마주 손 잡고 서있던 나와 와이프. 사진 찍어주시던 신부님. 와이프 발자국 찍혔을법한 그곳을 쳐다본다. "휴" 한숨을 내쉰다. '나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
지난 12월 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던 길거리는 서러웠다. 아내 장례식을 치르며 나는 울지 않았다. 두 딸들 함께 신부님 바라보며 꼿꼿이 서서 신부님이 시키는 대로 앉았다가 일어서고를 반복하였다. 그녀의 마지막 한 줌 재를 넣은 유골함을 가슴에 안으며 그 따뜻함 영원하기를 기도했다. 인천교구묘원 임시봉안당, 마지막 작별 자리에서조차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며칠 사이 나의 얼굴은 마치 뼈 위에 얇은 가죽을 덮어놓은 것처럼 말라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든 표정이 닳아 없어져, 어떤 감정도 담을 수 없는 질긴 가죽만 남은 것 같았다. 두 딸들을 끌어안으며 문득 눈이 아내의 유골함을 바라봤을 때,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듯한 착각에 유골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보고 있지도 않았다. 먼저 조심스럽게 눈을 돌린 것은 나였다. 나의 마지막 발길질이다. '나 혼자 잘 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