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터진다.

잠, 그리움, 말 그리고 글 터진다.

by fantasticbaby

(1/4) 잠 터진다.

너는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떨듯이 일어난다. 어젯밤 초저녁부터 스르륵 졸음에 지쳐 졸던 너. 평소와 달리, 포기하듯 침대로 달려가 누운 너. 새벽 일찍, 집을 나서는 일정도 부담된 너. 네가 처음 눈을 뜬 시간은, 새벽 1시이다. 평소에는 버티다가 '이제 잠잘까?'라고 생각했을 시간. 너는 다시 몸을 침대 위로 던진다. 다시 잠 깬 너. '이토록 오랜 시간 잔 적이 언제였던가?' 순간 잠이 터졌다고 느끼는 너.

갑자기 네 눈앞에서 불꽃이 터진다. 꿈인가 생시인가? 아니 현실이다. 너는 아파트 복도에 서 있다. 쌀쌀한 가을 바람결, 한 팔을 들어 아내를 감싼다. 아내의 숨결이 어깨를 타고 전해온다. 너는 생각한다. '이 날 지금, 언젠가 그리워할 때 있을까?' 앞을 알 수 없는 삶. 너는 느낀다. '언제 그놈의 암이 겉으로 드러날지.' 여의도 아파트 12층, 낮에는 눈앞에 남산이 보인다. 지금 밤, 눈앞 한강에서 터지는 불꽃놀이. "야!"하고 소리 내지른다. 너는 안다.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겠지.' 붉은빛, 노란빛, 작은 불꽃 올라가더니,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밝아진다. 어둠을 지운다. 쏟아진다. 불꽃이다. 그리움이다. 시간 지나가면서 온몸을 파고드는 서늘한 기운. 10월 말 가을 찬바람. "그만 들어갈까?", "조금 더 찍자." 너는 동영상 찍는다. 저장한다. 터지는 불꽃놀이 기록한다. 아니, 와이프와의 이 순간 영원히 기록한다. 행복이다. 마지막이기라도 한 듯, 다시 못 올 시간이기라도 한 듯. 너는 언젠가부터, 와이프가 먼저 죽을지도, 너 홀로 살아남아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서러움 느끼기 시작한다. 암 진단받았지만 자연 치유한다는 아내, 그 생각을 돌려놓지 못하는 너. 홀로 살아남은 서러움 터진다. 불꽃이다. 폭포수 같이 흘러내리는 불꽃. 터진다. 수년만에, 깊은 잠, 침묵의 잠, 죽음 같은 잠, 서러움의 잠, 오늘 터진 잠이다. '언제 또 지금처럼 잘 수 있을지.' 잠이 터진다.


(2/4) 그리움 터진다.

새벽 찬 바람 느끼며, 집을 나선다. '이젠 가을인가?' 그렇게 기다리던 비 내린다. 캄캄한 어둠 속을 천천히 걸어 주문진 버스터미널까지 간다. 비 흠뻑 맞은 너. 발 밑 물 웅덩이 피하지 못한다. 발이 차다. 신발 안은 물 젖은 양말로 철벅 인다. 바지가 젖는다.

결혼초 여의도 집 앞 버스정류장. '이제 집이다.'라고 너는 버스를 내린다. 눈앞에 보이는 와이프. 우산을 들고 추위에 떨며 너를 기다린다. '지금까지 얼마나 기다렸을지?' 콧등이 빨갛다. 너는 갑자기 늦은 시간 되도록 일어서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왜 나왔어? 집에서 기다리지." "아니 밤늦고 비 오니 걱정되어서." 말 미처 끝나기 전, 너는 와이프 어깨를 감싼다. 너는 우산을 받아 들고, 비 오는 밤거리 인도를 걷는다, 아내의 따뜻한 마음에 미안하다.

너는 차창 밖을 내다본다. 영동고속도로 신갈 IC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 들어선다. 많은 차들이 뒤로 밀려간다. 버스 우선차선으로 달린다. 비가 오는데, 너는 눈이 먹먹하다. 눈뜨니 만나는 서울이다. 와이프와의 수십 년 추억, 고스란히 쌓인 거리. 지금은 없다. 사랑하는, 그리운 사람은 없다. 어제 술자리 친구 말, 너는 떠오른다. "그러면 무조건 병원 끌고 가야 되는 거 아닌가?" "너희 마누라 별로 사랑하지 않았는 거 아닌가?" 그 목소리, 네 가슴을 뚫는다. 너는, 어제 그 장면 눈에 선하다. 너는 내뱉는다. 아니 생각한다. '그래 난 와이프 사랑하지 않았다.' '죽음 막지 않았다.' 터진다. 서러움 터진다. 그리움 가득한, 눈 익은 서울 거리, 이젠 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너는, 그리움 터진다.


(3/4) 말 터진다.

너는 웃는다. 미소 짓는다. 소리치듯 지껄인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 후배, 동료들을 만난다. 환한 미소. 할 말도 많다. 다 토해낸다. 흥분 섞인 그리움, 반가움이다. 아니 너는 과거를 아쉬워한다. 그리워한다.

너는 강릉으로 이사 온 후, 오직 와이프와 둘이 지내며, 둘만의 대화가 대부분이다. 그마저 와이프 사별 후에는, 말할 상대가 없다. 길거리 나선다. 바닷가, 소나무, 모래사장 그리고 멀리 푸른 하늘, 말이 없다. 와이프 사별 후, 더욱더 말할 사람 없다. 하루 종일 집에, 혹은 도서관 생활이다. 주문진성당 미사 시간, 신부님 만이 너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신다. 신부님과 잠시 얘기 나누는 게 전부다. 하루 종일 그런던 너다.

최근, 한 친구 너 보다 몇 년 앞서서 배우자 사별한 사연 알았다. 하루에 몇 번씩 통화한다. 그나마 그 친구와 통화 편하게 거리낌 없이, 일상생활에서 가정사까지 나눈다. 너는 손위 처남과 자주 전화통화 한다. 일하는 시간 피해, 너에게 전화해준다. 너는 오늘 지금, 수개월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들이 고맙다. 그들이 네 말을 들어준다. 아니 그들이 말할 틈이 없다. 네 말이 끝이 없다. 마지막 말 할 기회이기라도 한 듯. 너는 말을 놓지 않는다. 지껄인다. 나불댄다. 침이 튄다. 듣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말이 터진다.


(4/4) 글 터진다.

밤이다. 강릉 집으로 돌아간다. 어둠 속으로 달려가는 버스 안이다. 네가 쓴 모든 글에는, 네가 그동안 해온 예술적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소설, 시, 희곡, 수필, 영화, 음악 등이 네가 쓰는 블로그, 스레드, 브런치스토리 글과 상호작용 한다. 아주 짧게 접한 예술적 경험이, 네가 쓰고 있는 글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예술적 경험이 쌓여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 토대가 되기도 한다.

너는, 언젠가부터, 마음속 감정 느낌, 토할 듯 내뱉는다. 휘갈겨 쓴다. 길을 걷다가, 주위 풍경을 돌아본다. 풀잎, 나뭇가지, 철 따라 피고 지는, 색 다른 꽃, 모습 다른 꽃,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세월이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마주치는 사람, 얼굴 표정 옷 입은 모습, 웃는 모양 통화하는 소리, 신문 넘기는 태도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동작을, 자연의 변화를, 하늘도 매번 다르다. 아침 하늘, 저녁 하늘, 구름 낀 하늘, 파란 하늘, 푸르스름한 하늘, 글이 터진다. 주위를 둘러보고 마음속 글이 나온다. 친구들 대화 속 글이 변한다. 휘 갈겨쓰듯 내뱉듯, 시간을 넘나 든다. 바다를 보다 수십 년 전 바다로 간다. 신혼여행지 제주, 용암 흘러내린 용두암 앞바다. 보슬비 내리는, 희미해지는 바다. 강릉 바다를 보다, 제주도 바닷가 떠올린다. 그 바다는 다시 영국 포츠머스 앞 도버해협, 대서양으로 옮겨간다. 영국 흐린 날씨 속 바다. 그때 느낌 생각 행복감, 글로 쓴다. 글이 터진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긴 세월부터 시작된 지구역사. 인간이 살기 시작하고, 고대 이집트 그리스 시대 알던 지식들, 종교적 믿음에 의해 짓밟히고 사라지는 지식들. 르네상스 이후 보니 고대인들 지식이 옳았다는 진실. 안타까움. 너의 과학적 지식, 터질 듯 쌓여간다. 너는,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 전권을 읽고, 다시 첫 권부터 읽는다. 그 문학적 표현들, 산이 초록빛으로, 아니 눈 쌓인 흰색으로 변한다. 바람 부는 산이다. 강이다. 푸른 강. 바람 따라 흘러가는 배, 사공이 노 젓는 배. 깊은 산속 절, 그 속에서의 삶. 진주 강가 모래사장에서, 서울 길거리에서, 사람 모습, 걷는 장면. 서울 거리, 흑백사진 같은 풍경, 눈에 들어온다.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계속 읽는다. 소년의 죽음, 그 유령의 방황, 살아남은 자의 아픔. 총을 맞는다. 눈물을 쏟는다. 그 참담한 냄새, 죽음의 냄새. 단편소설 속 주인공들, 개인적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 죽음 이 옆에 있다. 글 한 문장, 한 문장, 너의 것이 된다. 글이 터진다.


잠, 그리움, 말, 그리고 글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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