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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Jul 15. 2019

명사는 없고 동사만 있는데 형용사가 수두룩하다

1.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다. 

“글을 씁니다.”

하면 대뜸,

“작가예요?”

하고 되묻는다.

“작가는 아니고, 글 쓰는 사람입니다.”


“무슨 글을 쓰시는데요?”

하면 물론,

“소설을 씁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겸연쩍다.

“소설가예요?”

라고 또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궁금해 하는 것은 동태가 아닌 형태다. 


2.

연초에 만난 부동산중개업자는 집을 보여주러 다니며, 몇 학년이시냐 물었다. 여대가 인접한 지역이어서,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야 한다’는 투로 물어왔다. 나는 ‘학생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내 팔뚝을 꼭 붙들고 애원했다.

“직장인? 직장인이시죠? 직장인이신 거죠?!”


그 무렵 나는 새벽에 일어나 종일 일했다. 자정에 가까워서야 일어났던 방으로 돌아가 다시 누웠다. 더러는 새벽에 누웠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눕기 위해 일어났고 일어나려고 누웠다. 일은 했지만 노동절을 특히 반기지는 않았고 노임은 받았어도 임금은 없었다. 삶은 때로 성취보다 착취를 먼저 일깨워주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지낼 수 있나?’ 싶은 집을 보여주면서, ‘너무 살기 좋겠죠?’라고 묻는 중개업자에게, 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흉내를 냈다. 그러는 편이 처지에 합당해보이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3.

꿈이라는 귀화종의 에너지가 내 젊음에 뿌리를 내리고 아무 것도 수확하지 못한 뒤로, 나는 꿈이라면 질색하는 인물이 되었다. 문학은 쓸모없으며, ‘쓸모없음’으로 기능한다는 아포리즘을 붙들고 나는 귀여울 정도로 야심에 차서 불구가 되었다. 성공에 관한 도식과 속물근성을 경멸했고, 도약을 신봉했다. 그러던 중 삼십대 중반이 배송되었다. 착불이었다.


청춘에서의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나잇값은 양도세였다. 내 세대의 ‘보통’에 입주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보증금을 안고 큰길을 돌다 문득 그림자를 보니, 최대한 나이고자 했는데 고작 내가 되었을 뿐인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림자는 짧았다. 뭐라 불러야 좋을지 애매한 무늬였다.


4.

오랫동안 내게는 명사가 없었다. 체언은 없고 용언만 있는데 관형어가 즐비하다는 표현이 한국적일지도 모르겠다. 명사-혹은 체언의 부재는 생면부지의 중개업자마저 불안으로 떠밀었다. 문장에서 주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성분이 없음을 알아본 것이다.


내 문장의 주어는 ‘나’라는 대명사가 전부다. ‘회사원’, ‘공무원’,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프리랜서’ 등의 보통명사를 쟁취하지 못한 ‘나’는 내 의도와 관계없이 무언가를 포기한 세대의 일원으로 기획되었다. 조직에 속한 현대인이 대체가능한 인력으로서의 자신을 한탄한다면, 세대를 관형어로 취한 대명사는 그를 수식하는 세대에서 분리되지 못하는 성분이다. 남다르지 않으면 보통이 되지만, 남들처럼 되지 않으면 특수해진다. 특수성이 대명사에게는 일반성이고, 그 일반성으로 보통과 구별된다. 


5.

내게는 이름이 없었다. ‘없음’으로 존재했다. 불구의 문장으로 일기를 써왔다. 일기를 다시 읽어보니, 그간에 쓴 수기에는 동사마저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동사가 없는 문장은 책상 보다 작은 일기장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름이 없었기에, 돌보지 않은 묘소의 잡초 같은 의구심을 늘어뜨리고 호명되지도 않은 채로 그 자리에 있었다.  


묘석 위에다 글을 쓴다.


처음이 아닌 것처럼 주저앉아라.

승리가 없는 것처럼 이겨내라.


어느덧 어엿한 동사 하나를 만들어냈다.

-2017년 2월 11일 토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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